매일신문

효도마저 대가성…孝테크 세태

독립해서 살기엔 팍팍한 살림 "기댈 덴 부모님 재산뿐"

김모(35·경산시 임당동)씨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속이 탄다. 늘 시댁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왔던 아내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시댁과의 거리두기를 선언했기 때문.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캥거루족' 처지에 부모님께 밉보여 좋을 게 없는데도 아내는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다. 그는 "맏형은 의사, 둘째형은 사업가로 잘나가지만 월급쟁이는 부모님이 물려주실 재산밖에 믿을 게 없다"며 "'부끄럽지만 효(孝)테크' 외에는 대책이 없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캥거루족

어버이날을 맞은 부모들이 '집나간(出家) 캥거루족'들의 등살에 허리가 휘고 있다. 대학 등록금에다 어학연수 비용, 결혼자금까지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도 모자라 결혼 후에도 경제적인 도움을 외치는 자식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효도마저도 돈을 바라는 '재테크 수단'이 되는 게 요즘 세태다.

최모(42·여·달서구 용산동)씨는 '효테크' 때문에 고된 시집살이를 꾹꾹 참아내고 있다. 50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시부모님이 "시어른을 모시는 자식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최씨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늘 자금난에 허덕이는 남편을 보면 시부모님께 억지효도를 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현상은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월급을 받아도 부모님이 물려주는 재산 없이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대열에 들어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크게 오른 집값도 '효테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난해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월급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1997년에는 내집마련까지 7년 소요됐지만 2007년에는 무려 13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년간 도시 근로자의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1.5배 늘어났지만 아파트 가격은 2.6배나 올랐다.

◆이래저래 가슴 아픈 부모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노인들은 가슴이 답답하다. 돈이 있어도 걱정, 없으면 더 걱정이다. 6일 오후 대구 남구 한 경로당에서 만난 허모(76)씨는 "돈 없으면 부모 대접도 못 받는다"고 푸념했다. 그는 "명절 때 서울에 사는 자식들이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전화나 하는 게 고작"이라며 "줄 돈이라도 있으면 모든 것을 내주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요즘 세태에 돈이 있더라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김모(67)씨는 "자식들이 손 벌린다고 이것저것 다 해줬다가 나중에 푸대접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억지효도를 받더라도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사는 것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일정 부분 선을 긋고 경제적인 자립심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여성부의 '청소년 의식조사'에서 청소년의 93%는 대학 학자금 전액을, 87%는 결혼비용을, 74%는 주택구입비용이나 전세자금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응답할 정도로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향교 도호경 전교는 "다 주고도 더 못 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부모인데 젊은 세대들이 부모 마음을 반만이라도 헤아려주면 좋겠다"며 "부모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한계치를 미리 정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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