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흉기 난자사건으로 본 '인간의 폭력성'

당신 내면에도 악마가 잠자고 있다

지난 8일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25세의 한 남자가 2t 트럭을 몰며 행인들을 잇따라 친 뒤 차에서 내려 행인들을 뒤쫓아가며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 때문. '묻지마식' 살인 행각에 7명이 숨지고 10명이 크게 다쳤다.

인간의 폭력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무 원한관계도 없으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고, 수십명을 연쇄살해하고도 아직 더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도 있다. 인류 역사에서 '인종 청소'라며 자행되는 무시무시한 범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비록 명령 때문이라고 하지만 양민을 학살하는 군인들의 만행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영화와 역사 속에 드러난 폭력의 기록

독일 영화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2002년) 내용을 보자. 심리학 권위자인 톤 박사는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기 위한 심리 실험을 위해 신문광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다. 지하 임시감옥을 만든 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연구자는 개입하지 않고 다만 피실험자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엄격한 심리테스트를 거쳐 피실험자 20명이 선발된다. 전직 프리랜서 기자인 택시운전자, 7년간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는 항공사 직원,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가수 등. 평범한 시민들은 죄수 역할을 할 12명과 간수 역할을 할 8명으로 나뉘어 14일간의 역할을 수행하면 될 뿐이다. 첫날은 정말 게임처럼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실험이 진행되면서 이들은 진짜 죄수와 간수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간수들은 지배자로 변해 죄수들에게 강제로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옷을 벗겨 모욕을 주며,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머리를 깎아버린다. 폭력은 질서를 위한 명분 아래 정당화하고 급기야 살인까지 벌어진다.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그린 영화는 많다. 캄보디아 사태를 그린 영화 '킬링 필드', 아프리가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 간 내란에서 벌어진 폭력성을 고발한 '호텔 르완다', 나치의 잔학상을 그린 '쉰들러 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요소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념과 종교, 인종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갈등 요소가 과연 영화 속에서 정해준 간수와 죄수라는 역할 맡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서로 다른 이념과 종교, 인종이라는 '역할'을 배정받아놓고 과연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신의 실험 속에 존재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 같은 구성 요소는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종 청소'로 기록된 보스니아 내전이 있었고, 1971년 벵갈 지역에서 파키스탄 병사들이 저지른 조직적인 강간도 있다. 당시 벵골 지역 반란이 실패로 끝난 뒤 방글라데시에 살던 20만~40만명의 여성이 9개월 동안 강간당했다.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중국 난징에서 26만명(또는 35만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살해됐다. 난징 대학살은 영화로 옮기기조차 힘들 만큼 폭력적이고 잔인했다. 일부 군인들은 '살인 경쟁'을 게임처럼 즐겼다.

◆폭력성에 관한 심리 실험들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지난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에서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주도로 이뤄진 실제 실험에 근거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정신과적 병력과 전과가 없던 지극히 평범한 지원자 24명이 감옥생활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실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 역할 참가자들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변하면서 죄수들을 학대했고, 죄수 역할 참가자들은 극심한 혼란과 불안·우울증에 시달렸다. 당초 2주로 예정된 실험은 단 6일 만에 끝난다. 결과가 학계에 보고되자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실험이었지만 어느 순간 참가자들은 이를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였고, 역할에 충실하게 변신했다. 죄수 역할자들은 유니폼을 입고 배지를 단 교도관 역할자들에게 두려움을 느꼈고, 선글라스로 자신의 감정과 눈길을 숨긴 교도관들은 죄수들의 반발을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진압했으며 대·소변을 보는 자유마저 박탈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지켜보는 연구자들도 내부의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실험을 진행하다가 외부에서 이를 본 사람들이 실험의 심각성을 지적하자 문제점을 깨달았다는 것.

1963년 예일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기억 연구'에 참여한다는 빌미로 실험자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들의 폭력성이 초점이었다. 실험은 2인 1조로 이뤄졌다. 한명은 교사, 다른 한명은 학생 역할을 한다. 단어를 외우게 한 뒤 틀릴 때마다 15~450V까지 전기충격을 줄 수 있도록 짜여졌다. 다만 학생 역할은 실제 피험자가 아닌 실험자와 미리 짜 둔 가짜 피험자였다. 실험이 시작되고 학생이 틀릴 때마다 선생의 전기충격 강도는 증가했으며, 이때 학생은 고함을 치고 선생에게 충격을 멈춰달라고 사정했으며, 끝 무렵에 가서는 조용히 있기만 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실험자는 옆에 서서 선생에게 계속 충격을 줄 것을 독촉했다. 계속 전기충격을 늘려도 되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피험자에게 "내가 책임진다. 걱정말고 계속 해라"라고 충동질하는 것이다.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의 소리를 들으면서 일당 4달러를 포기하고 언제든지 일어서서 실험의 부당함을 항의할 수 있었지만 그런 피험자는 없었다. 놀랍게도 피험자 중 65%가 최고전압, 즉 '위험' 표시가 돼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450V까지 충격을 가했다.

인간들은 권위에 왜 복종하고 집단이 저지르는 부당함에 순응하는 것일까. 사회과학자인 솔로몬 애쉬는 지난 1951년 집단 압력에 관한 연구를 했다. 가령 A선과 B선 중 실제로 B선이 더 길다 하더라도 집단이 A선이 더 길다고 주장하면, 어리둥절해진 피험자가 집단의 의견에 순응하기 위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A선이 더 길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인간 폭력성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본능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살고자 하는 욕망(리비도)과 죽고자 하는 욕망(타나투스)을 가지고 있다. 죽고자 하는 욕망이 자신에게로 향하면 자해 및 자살을 하게 되고, 타인에게로 향하게 되면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미국 위스콘신대 리처드 데이비드슨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폭력의 뿌리를 뇌 안에서 찾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뇌의 전전두엽에 이상이 생겨 공포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되면 공격성을 충동적으로 폭발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또 지난 2004년 심리학자인 애드리언 레인 박사는 '사이코패스'(psychopath), 즉 범행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 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사이코패스들의 변연계, 특히 해마가 크게 손상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결론적으로 전두엽 피질에 결함이 있거나, 변연계 중에서 해마와 편도체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폭력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

반대로 폭력의 뿌리가 사회적 위험요소, 가령 학대나 부모의 불화 및 이혼, 빈곤 등과 관계되어 있다는 이론도 있다. 심리학자 J. 덜러드는 "폭력은 욕구불만의 반작용으로서 이는 환경적인 요소와 학습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심리학자 A. 반두라는 "폭력의 발생 근원은 궁극적으로 볼 때 사회적인 요인"이라며 사회학습 이론을 주장했다.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폭력 성향은 유전적 결함, 성장 환경, 뇌 손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마음의 병리 현상으로, 선천적 본성이자 학습된 행동으로 본다.

무리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도 이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군중들이 한꺼번에 전두엽 피질이나 변연계에 이상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무리 속에 있으면 인간은 용감해지고 자신의 판단보다는 무리 속의 논리에 따라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남들도 했다는 변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들 무리는 그 자체로 또는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에 의해 권위를 갖게 되고, 권위에 따른 행동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울러 처음에 무리가 저지르는 폭력을 보고 반감을 갖지만 그 행동이 반복되고 무리 내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행되면 자신도 반감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동참하게 된다. 인간의 폭력성을 일종의 군중 심리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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