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쇠고기 메뉴 아예 빼버리겠다" 원산지 표지세 반발

"메뉴판에 일일이 원산지를 쓰느니, 쇠고기 들어가는 메뉴를 없애겠다."

대구 수성구 황금동의 A한정식(규모 106㎡)은 오늘부터 밑반찬으로 내놓던 쇠고기 장조림을 없애기로 했다. 쇠고기는 물론이고 야채 등 모든 식재료를 국산만 쓰고 있지만 반찬의 원산지까지 표시하는 것이 번거롭고 메뉴판도 너저분해지기 때문. 식당 주인은 "한가지 요리에도 수많은 식재료가 들어가는데, 일일이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일단 소량의 쇠고기가 들어가는 밑반찬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농산물품질관리법 개정 시행규칙이 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모든 음식점과 급식소 등으로 전면 확대됐지만 식당들의 혼란은 여전하다.

대형 식당들은 대대적인 메뉴판 정비작업에 들어갔지만, 규모가 작은 식당들은 여전히 거부 의사가 강했다. 쇠고기가 들어가는 국이나 반찬을 없애겠다는 식당들도 속출하고 있다.

◆쇠고기 쓰면 범법자냐?

범어동의 B음식점은 국이며 반찬에 들어가는 쇠고기의 원산지까지 표시할 수 없어 매일 쇠고기나 쌀의 거래 내역서를 식당 입구에 붙이기로 했다. 식당 주인은 "국이나 반찬은 계절 등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일일이 메뉴판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메뉴가 매일 바뀌는 백반집 등도 큰 고민에 빠져있다. 서구 원대동의 C식당 업주는 "국 끓일 때마다 들어오는 쇠고기 원산지가 다른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표시하냐"고 했다.

규모가 작은 D식당(50㎡) 주인은 "고기의 질을 떠나 앞으로는 한우를 쓰지 않으면 파렴치한 식당이 될 것"이라며 "질 좋은 수입육 대신 등급이 낮은 한우를 쓰면 된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영세식당들은 원산지표시제가 대형식당을 위해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범어동의 E식당(33㎡) 업주는 "손님 대다수가 음식 가격만 보면 수입육을 쓰고 있다는걸 아는데, 이를 명시적으로 표시하면 손님이 크게 줄 것"이라며 "국산 재료만 쓴다면 식재료값이 오르고,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게 돼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은 밥 먹을 곳도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단속은 제대로 될까?

원산지 표시제가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됐지만, 소규모 식당 등에 대한 단속은 적어도 이달 20일은 넘어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은 9일부터 23일까지 대구 구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농산물품질관리법 관련 교육에 주력할 계획이다. 강력한 단속보다는 홍보와 계도 위주로 법 취지를 알리겠다는 취지다. 특히 100㎡ 미만 음식점에 대해서는 허위표시는 처벌을 하지만 미표시의 경우 원산지표시 의무화를 설명하고 권고하기로 했다.

경북농관원 관계자는 "소규모 식당들은 일단 9월까지 단속과 홍보를 병행해 원산지 표시제 정착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규모 음식점의 경우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냉면 육수, 찌개, 탕 등에 사용되는 육수에 들어가는 육류는 원산지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단속인원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대구의 경우 원산지표시제 대상 음식점만 6만여개지만 농관원의 단속 인력은 겨우 7명이다. 당장 인력충원도 없는데다 구청 등 지자체와의 협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명예감시반이나 시민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농관원 관계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정책이니만큼 앞으로 시민감시와 식당업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8일부터 쇠고기는 규모에 상관없이, 쌀은 100㎡ 이상 음식점이 단속대상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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