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장마는 아이들을 눈 뜨게 하고/정화진

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장독마다 물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이 물에 잠겨 있지 뭐예요

아가씨, 이상한 꿈이죠

아이들은 창가에서 눈 뜨고

냇물을 끌고 꼬리를 흔들며 마당가 치자나무 아래로

납줄갱이 세 마리가 헤엄쳐 온다

납줄갱이 등지느러미에 결 고운 선이 파르르

떨린다 아이들의 속눈썹이 하늘대며 물 위에 뜨고

아이들이 독을 가르며 냇가로 헤엄쳐 간다

독 속으로 스며드는 납줄갱이

밤 사이 독 속엔 거품이 가득찬다

치자향이 넘친다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새언니, 그건 고기알이었어요

냇가로 가고 싶은 아이들의 꿈 속에 스며든 것일 뿐

장마는 우리 꿈에 알을 슬어 놓고

아이들을 눈 뜨게 하고

향기로운 날개를 달게 하고

아이들은 물 속에서 울고불고 날마다

독을 마당에 늘어 놓게 하고

혹시 아시는지, 우리가 모두 바다의 자궁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양수다. 태아는 양수 속에 떠서 자라는데 그 성분이 바닷물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바다를 제 몸 속에 넣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바다에서 살 수 없으니 바다를 몸 속에 넣고 떠나온 셈인가.

그래서일까, 쉼없이 비가 내리는 장마가 계속되면 아이들은 물고기가 되어 냇가로 달려가는 꿈을 꾼다. '치자향' 가득한 시원의 기억을 간직한 채. 그 꿈에 장마는 알을 슬어놓고, 그 알이 눈떠 납줄갱이가 되고, 그 등지느러미에 얹혀 우리는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로 초대된다. 단 두 권의 시집으로 한국 여성시사에 지워질 수 없는 존재감을 알리고 가뭇없이 사라진 시인. 그 신비로운 시세계를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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