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라며 몸을 꼬는 우진이는 초교 2년생이었다. "저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는 주위의 말이 없었다면, 그저 유치원생 정도로 생각할 만큼 우진이의 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훨씬 작았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꼬마 하나가 "형, 우리 컴퓨터 놀이 하자"라며 우진이에게 매달렸다. 우진이보다 어른 손으로 한뼘이나 더 큰 꼬마는 초교 1년생이라고 했다.
8일 오후 달서구 용산동 자용모자원에서 만난 우진이의 엄마 한은정(가명·35)씨는 "그러지 않아도 경주에 있는 용하다는 한의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키는 둘째 치고 두통을 호소하는 아들을 위해 입소문이 난 한의원을 찾았다고 했다.
150㎝가 채 안돼 보이는 1973년생 엄마와 1m 남짓한 2000년생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자며 출입문 손잡이를 함께 잡고 돌렸다. 한씨의 명치와 우진이의 눈이 아파트 출입문 손잡이와 일직선을 이뤘다. 일반인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신경을 써본 적도 없는 아파트 출입문 손잡이의 높이는 두 모자에겐 상당히 높아 보였다.
"같이 살려고 하니 아이한테 이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머리도 자주 아프다고 그러고, 키도 안 크는 것 같았어요. 심리적 불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왜소증'이라더군요."
한씨가 우진이와 함께 살게 된 건 2년 전부터였다. 1996년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알게 돼 함께 살았던 한씨는 4년 뒤인 2000년 우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남자에겐 가정이 있었다. 졸지에 미혼모가 된 한씨는 우진이를 남자에게 맡긴 채 친정에서 소일하며 지냈다. 그러나 2년 전 추석 즈음 그 남자는 우진이의 손을 한씨에게 맡기며 "알아서 키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유도 묻지 못했다. 다만 어린 것의 작은 얼굴을 보며 그간 아이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난해 우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한씨의 손은 바빠졌다. 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게 시급한 문제였다. 1년째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힘겹게 지내던 한씨는 "아이가 유난히 작은 것 같다"는 주변의 말도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먹고사는 데 빠져들수록 우진이의 정수리는 2년째 자신의 가슴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지난 5월 대학병원을 찾았다. 설마 했던 마음이 사실로 나타났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초교 2년생이지만 5, 6세 정도 아이의 키라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 키를 키워야 한다"는 말도 들렸다. 한달에 한번씩 50만~60만원씩 들여 성장호르몬을 투여해야 한다는 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진이의 상태를 확인했던 영남대병원 박용훈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같은 나이, 같은 성(性)을 가진 아이 100명 중 3번째 이내로 키가 작으면 일단 왜소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면서 "또래 아이들의 평균 신장이 126㎝가량이지만 우진이의 경우 111㎝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115㎝가 그 또래의 왜소증 기준인데 우진이는 4㎝나 모자랐다. 성장이 계속 지지부진할 경우 사춘기가 됐을 때 성적(性的) 발달이 늦어질 수 있어 지금 치료를 지체하면 나중에 성호르몬을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또다시 아이를 수렁에 빠뜨릴 수 없다는 모정은 취재 내내 한씨의 두 눈에서 눈물이 돼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진이의 키가 자라지 않은 건 그동안 엄마의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자책이 내내 가슴을 때리는 듯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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