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레이라는 부부를 위한 상담사가 지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화성은 전쟁의 신, 금성은 미의 신이라는 이야기에서, 각기 마르스의 '창과 방패'와 비너스의 '거울'이라는 이미지로 서로 대비가 된다는 것이다. 간혹 부부싸움의 뒤끝으로 자주 떠올려 보고는, 자기 반성의 방편으로 요긴하게 써먹기도 한다.
요컨대 금성인인 여자는 끝없는 이해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화성인인 남자는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 사랑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대처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당황하고는 한다. 마침내 그것을 인정할 수 없을 때, 상대방과 스스로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금성인은 상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공감과 애정을 확인한다. 반면에 화성인은 무언의 신뢰감으로 지켜보다가, 상대방의 요구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간다. 이러한 코드가 서로 어긋나게 읽혀지는 경우, 뜻밖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가 아프고 괴로웠던 일을 그냥 그대로 함께해 달라는 것이다. 그 고통을 공감해주고 이해해 주는 시늉만으로도 충분한데 화성인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그네들은 대뜸 무딘 창을 휘둘러서 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주려고 허둥대거나, 아님 나더러 어떡하라는 것이냐 라며 불끈 화를 내고는 완고한 방패 뒤로 숨어버린다. 얼토당토아니한 불평이나 요구를 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이라며 되레 화를 낸다는 것이다.
서로 간 소통의 어려움이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이랴. 고열로 밤새 보채던 아이를 업고 온 엄마에게 대뜸 창을 내지르거나 방패 뒤로 숨어버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애들 감기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치거나, 혹은 "그럼 내 처방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며 얼굴을 찌푸리면서. 잠시 후면, 금방 깨달을 수 있는 무수한 신호들을 죄다 무시해 버리고 말이다. 단지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지새운 지난밤의 힘겨움을 이해하고 공감해 달라는 것임을. "참 애쓰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끄덕여주는 고갯짓만으로도 진작 고마워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그렇다, 지금 당장 나의 신통력을 보여 달라고 따지자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힘겨움을 그냥 그대로 함께해 달라는 하소연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돕는다는 것이 꼭 우산을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데에서 비로소 시작되기도 한다, 는 이야기의 의미를 뒤늦게야 새겨보기도 한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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