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이 '초강력 개입'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7일부터 9일까지 사흘동안에만 무려 50원 가까이 떨어졌다. 환율 낙폭이 이렇게 큰 것은 10년만에 처음이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위해 고환율을 추구했던 정책 당국이 심각해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책 기조를 돌연 바꾸면서 환율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이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기름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너무 올라있는 상태라 환율 하락을 통해 원자재 가격을 하루 빨리 낮춰야한다며 정책당국의 개입에 환영하는 기업들이 있고 또 상당수 수출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급락하는 환율에 우려도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의 배경에는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투기적 수요가 많았다며 외환당국이 투기적 달러 수요를 상당 부분 차단시키는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렇지만 국제유가가 계속해서 치솟는다면 외환당국 개입의 효과가 줄어들 수 밖에 없어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외환당국 왜 나섰나?
외환당국이 10년만에 최고 낙폭이라는 기록을 쏘아올릴 만큼 전격적인 '환율 끌어내리기 작전'에 나선 이유는 '물가' 때문. 국제유가가 자고 나면 뛰는 상황에서 고환율로 인해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정책당국은 최근 이어진 물가폭등 상황을 고환율이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판단하고 환율을 잡으러 나섰다. 환율을 잡지 않고서는 거시경제에 닥칠 '쇼크'를 차단하기 힘들었고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정책당국은 최근 고환율이 이어진 배경과 관련, 투기적 수요에 주목했다.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달러를 갖고 있는 세력들이 달러를 좀처럼 팔지 않는가 하면 달러를 사모으는 세력도 더욱 늘어왔던 것이다.
정책당국은 9일 하루동안에만 50억달러라는 엄청난 '달러 매물 폭탄'을 터뜨리면서 달러값을 '확' 내려버렸다. 투기적 세력에 대해 "달러값을 확실히 내려주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더욱이 정책당국의 이번 조치는 과거처럼 방어적 개입이 아닌 공격적 개입이었다. '확실히' 달러값을 내려버릴 것이며 향후에도 달러값 상승을 철저하게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외환당국이 1천30원대의 환율도 용납하지 않고 더 끌어내린 9일 상황을 보면서 1천20원대를 마지노선으로 정책당국이 내친김에 세자릿수 환율 복귀도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현장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정부의 환율 개입에 대해 찬반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 최대 차부품업체 가운데 하나인 에스엘의 김희진 상무는 "국제유가 폭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 급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환율이 더 떨어져야한다"며 정책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환영했다.
그는 "세자릿수 환율로 복귀한다면 10%이상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도 수출을 하지만 고환율로 인해 얻는 수출 환차익보다는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값 폭등이 더 큰 고통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저환율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차부품업체들은 통화옵션상품인 KIKO의 추가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환율이 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KIKO로 인해 전국적으로 무려 2조5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수출비중이 80%에 이르는 ㈜호명염직 강구문 대표는 "수출에서 누리는 환차익 규모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환율 하락이 원사값의 추가 급등과 염료값 상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섬유업체 입장에서는 950원에서 1천원 사이에서 달러값이 일정하게 움직여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고 했다.
수출비중이 30%인 경영텍스 이명규 대표는 "환율이 더 떨어진다면 수억원의 환차익을 날려버리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원사값 등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는 시점에서는 환차익이 큰 의미가 없다"며 "급락만 아니라면 환율이 하향안정세를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고 했다.
정책당국 개입을 비판하는 업체도 많다.
섬유업체인 태광무역 이희대 대표는 "원자재 가격 급등을 고환율로 인한 환차익으로 만회해왔다. 급작스레 환율을 떨어뜨리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다. 정책당국은 예측 가능성과 환율 안정에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텍 한 관계자는 "환율 1천30원대에 원자재를 이미 사놨는데 환율하락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 효과를 보려면 서너달이나 기다려야한다. 지금 당장은 원자재 가격 하락 효과보다는 환율 하락으로 인해 환차익을 놓치게 돼 손해가 더 크다"고 했다.
◆정책당국 개입, 역효과는 없을까?
일부에서는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정책당국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경계감을 내놓고 있다.
달러가 귀해지면서 달러값이 뛰는 것은 정부의 판단대로 투기적 수요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유가폭등, 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 '정책당국 개입 경계론자'들의 주장이다. 시장의 수요·공급 구도에 따라 자연스레 달러값이 올랐는데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면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책당국은 2천500억달러에 이른다는 외환보유고를 사용, 달러를 매도하는 방법으로 달러값을 끌어내리고 있다. 외환이 부족해 IMF구제금융을 신청, 큰 고통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외환보유고를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단기외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고 사용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 무디스 등 국제적 신용평가회사는 외환보유고 소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책당국이 몇달이고 계속해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구은행 트레이딩부 김태완 차장은 "정책당국이 적어도 한달 이상 외환시장 개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달러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시장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의 성공 열쇠는 국제유가, 경상수지 적자 등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즉 유가가 안정되어야 정부가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원/달러 환율이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지속된다. 고유가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상황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외환보유고까지 쓰는 '초강경 정책'이 자칫 큰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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