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내 목을 가져가시오

"風蕭蕭兮 易水寒 壯士一去兮 不復還."(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강물은 차갑구나.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자객 刑軻(형가)는 이 시를 남기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의 위협 앞에 떨고 있던 연나라 태자 단의 밀명을 받고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서였다. 형가는 진나라 대신들에게 뇌물을 주고 진시황이 앉은 단상 위로 올라가는 기회를 잡는다. 진시황은 자신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단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진시황 암살은 결국 실패했지만 형가가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樊於期(번어기)라는 사람의 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번어기는 진시황에게 가족을 몰살당하고 연나라로 망명한 진나라 장군으로 진시황은 그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놓고 있었다. 번어기는 형가로부터 "진시황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목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환율정책 실패의 책임을 장관이 아닌 차관에게 물었다 해서 '대리경질'이란 조소를 듣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에 대해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나섰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환율정책과 외환보유고를 이용한 외환시장 개입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에게 해임건의안은 통과되지 않더라도 치명적이긴 마찬가지다.

그에게 기획재정부 조직이 충성을 다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장관에게 어떤 부하가 충성을 바칠까.

차관의 대리경질로 강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목숨' 보전이 이 대통령에게는 비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강 장관이 번어기처럼 자기 목을 이 대통령에게 주었으면 자기도 살고 이 대통령도 사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조지프 나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맥락을 파악하는 지적 능력을 지닌 지도자는 복잡한 상황에서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고 대응하며, 지지자들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을 조정할 줄 안다." 이 대통령과 강 장관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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