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수국―젖가슴 6/권혁웅

귀신사(歸信寺)* 한구석에 잘 빨아, 널린 수국(水菊)들

B컵이거나 C컵이다 오종종한 꽃잎이

제법인 레이스 문양이다 저 많은 가슴들을 벗어 놓고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 마라

개울에 얼비쳐 흐르는 꽃잎들을

어떻게 다 뜯어냈는지는 헤아리지 마라

믿음은 절로 가고 몸은 서해로 가는 것

땅 끝을 찾아가 데려온 여자처럼 고개를 돌리면

사라지는 것

소금 기둥처럼 풀어져 바다에 몸을 섞는

그 여자를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도금한 부처도 그대 눈빛도 다 서향(西向)이지만

그 여자, 저물며 반짝이며 그대를

단 한 번 돌아볼 테지만

*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 있는 절 이름.

꽃을 시각과 후각으로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미각으로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수국은 촉각으로 만나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젖가슴처럼 몽실몽실하고 둥근 형태. 살포시 움켜쥐면 코카콜라 병처럼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양감(量感)을 느낄 수 있다.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라선 눈을 흘기기도 하지만…….

수국이 젖가슴을 닮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레이스 문양까지는 보지 못했다. 관념의 미망과 허망을 통찰하고 있는 시이지만, 나는 어째 B컵, C컵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어떤 점에서 시의 힘은 자성(磁性)이 강한 어휘들의 조합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이 수국은 절간에서 많이 심는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수국이 헛꽃이라는 게 하나의 단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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