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당신의 하체는 튼튼하십니까?

"양상~ 양상~ 여기 좀 보세요." 건물을 가로질러 저만큼 앞서가던 미라이공업의 총무과장 다나카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화단 앞에 멈춰 선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무궁화나무는 우리 회사를 방문하는 한국 손님들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제가 제안해 이번에 심은 것이지요. 조금 전 입구에 내건 태극기도 제 아이디어예요." 그는 환하게 웃으며 뒤따라 온 우리 일행을 둘러보았고, 그 마음 쓰임새에 나를 비롯한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 마음은 덩달아 즐거워졌다.

'항상 생각하라'는 사훈 아래 사원들의 아이디어 창출을 북돋워 생산품의 무려 98%가 특허품인 회사. 다른 기업에는 없는 물건만 만들며, 고객의 요구가 있다면 단 한 개의 제품이라도 제작하고 배달하는 회사. 우선은 달콤한 대기업 납품을 거절하는 대신 '미라이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는 개미고객들의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거대기업 마쓰시다를 물리치고 건축자재 전기설비분야 1등을 유지하는 회사.

이곳이 '유토피아 경영'으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미라이공업이다. 거기다 '일년 365일 중 노는 날 180일 이상, 전 직원 정년 70세 보장, 정리해고와 잔업 전혀 없음, 남녀를 불문하고 3년의 육아휴직 보장, 5년마다 전 직원을 해외여행 보내주되 과제는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벤트 해보기' 등의 복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 회사의 야마다 사장은 "내가 하는 일이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서 이들의 의욕을 최대화할까 고민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국내로 눈을 돌려 보자. "여러 사장님들, 의견 있으면 주시지요." 회의를 주재하던 지역 굴지의 기업 A사의 젊은 임원이 말을 마치자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침묵을 깨고 납품업체 B사장이 어렵사리 손을 들었다. "상무님께서 한 말씀 하라 하시니 하는 얘기인데, 요구하신 납품 단가가 너무 낮습니다. 아시다시피 원자재비는 하늘을 찌르는데 단가를 올리기는커녕 내리시겠다고 하니 너무 힘듭니다. 더구나 결제는 5, 6년짜리 어음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저희 다 굶어죽습니다." 일순 젊은 임원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함께한 납품업체 사장들은 이 돌발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차마 말 못하고 꿀꺽 삼키고 있던 얘기를 대신해준 B사장이 고맙기도 하지만 그에게 떨어진 괘씸죄는 어찌할꼬.

돌출발언을 한 B사장의 회사가 다음날로 당장 납품이 끊겼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어떡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B사장은 "뭐, 어차피 벌어져야 할 일이었습니다. 원재료비도 안 되는 단가로 납품하라니 불가능하죠. 다른 업체들도 얼마 더 버티지 못할 거예요. 진작 경쟁력을 길러 거래처를 다변화했어야 했는데…." B사장의 표정엔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조업 세계 최강인 일본 기업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허리 아래 하체를 가장 중시하는 '현장중심, 인간중심경영'과 중간관리자의 미들 업 다운 리더십(middle up down leadership:리더십이 위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관리자 아래로 분산되는 형태)에 있다고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말한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구루(사상적 지도자)' 20인 중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그들의 '망발'에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다가도,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일본연수를 진행하며 봐온 세계 최강 일본제조업의 '하체 최강 경영시스템'에 일견 등골이 서늘해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도 문제는 반면교사로 삼더라도, 납품업체 단가를 후려쳐 자사 이익만 추구하고 근로자를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몇몇 국내 기업들의 작태를 보노라면 현장근로자를 우선하고, 납품업체를 기술지도하여 경쟁력을 키우고 적정이익 보장으로 '상생의 길'을 가는 일본기업들에게서 배울 거리는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세계최저가격 제품 생산 중국기업, 세계최고품질 생산 일본기업의 거대장벽을 뛰어넘는 진정한 극일, 세계최강의 경쟁력을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양현주(경영지도사·영남이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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