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노름으로 탕진했다. 눈만 뜨면 마작을 했고 결국 재산을 모두 잃었다. 그 충격으로 늙은 아버지는 쓰러졌고 소작인을 부리던 집안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아내는 장인의 손에 끌려 친정으로 떠났다가 둘째 아이 유경을 낳고 여섯 달 만에 돌아왔다.
유경은 마르고 작은 아이였지만 달리기를 잘했다. 읍내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던 날 아버지 복귀는 빈 지게를 길가에 걸어놓고 아이들이 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들 유경은 2등으로 달리는 아이보다 한바퀴나 먼저 돌아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앞선 정도가 아니라 마을을 열 바퀴 도는 경주에서 한바퀴를 더 빨리 돌았다. 유경은 1등으로 들어온 다음 뒷짐을 지고 서서 자기보다 키가 큰 다른 아이들이 헉헉거리며 달리는 것을 구경했다.
아버지 복귀는 큰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빈 지게를 지고 서서 우쭐대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아이의 아버지임을 알렸다. 뚱뚱한 체육선생은 유경에게 사탕을 듬뿍 사주었다. 그는 며칠 뒤 집으로 찾아와 입이 마르도록 유경을 칭찬했다. 본격적으로 훈련하면 국제대회에 나가서 서양사람들과 나란히 달려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 복귀는 아들이 달리기 선수로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달리기로 입에 풀칠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뚱뚱한 체육선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이 학교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한다는 사실은 기쁘고 행복했다.
1년 뒤 유경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 출산 중에 피를 많이 흘렸다. 교장선생은 이 지방 현장의 부인이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은 곧 5학년 아이들을 집합시키고 병원으로 달려가 헌혈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교장에게 헌혈한다는 말에 명절을 맞이한 듯 기뻐했다.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몇 명의 아이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교문 밖으로 달려갔다. 유경은 신발을 벗어들고 달렸다.(신발이 닳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에) 네다섯 명의 다른 아이들이 뒤를 따라 달렸다.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유경이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했다.
"제가 일등으로 왔어요."
다른 아이들도 곧 도착했지만 혈액형이 맞는 아이가 없었다. 유경은 달리기를 잘해서 가장 먼저 달려왔고, 운 좋게도 혈액형도 맞았다. 병원 직원이 유경의 피를 뽑기 시작했다. 그는 현장 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아이의 피를 한없이 뽑아냈다. 유경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면서도 유경은 '힘들다' '괴롭다'고 말하지 않았다.(착한 아이들은 힘들 때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입술까지 하얘지자 아이는 당황해서 말했다.
"머리가 어지러워요."
"원래 피를 뽑으면 어지럽단다."
피를 뽑는 사람은 멍텅구리였다. 그는 계속해서 피를 뽑았고 나이 어린 유경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당황해서 의사를 불렀다. 이미 심장이 멎은 후였다. 아버지 복귀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들 유경은 벽돌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작고 마른 몸에 눈을 감고 입술을 꽉 다문 채 죽어 있었다. 점심 때 펄펄 날아서 학교로 갔던 아이는 아직 어둠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복귀는 그날 저녁 죽은 아들을 안고 집으로 갔다. 가다 서다, 서다 가다 하며 안고 가기도 했고, 업고 가기도 했다.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운 아이의 얼굴이 아버지의 목을 눌렀고, 밤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복귀는 중병을 앓는 아내에게 아이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선산으로 가서 홀로 땅을 파고 아이를 묻었다. 눌린 돌이 무겁지 않을까 염려하고 염려했다.
재능과 행운의 뒷면에는 흔히 불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유경은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아이는 그 재능과 행운(혈액형이 맞아 교장선생님께 헌혈할 수 있다는) 때문에 죽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전문 노름꾼 용이는 마작으로 복귀의 재산을 몽땅 빼앗는 데 성공했지만, 공산당이 득세하자마자 악랄한 지주로 몰려 처형당했다. 용이는 노름에 재능이 있었고 운이 따라줘서 가난뱅이에서 지주로 변신했지만 그 때문에 죽었다. 반대로 복귀는 노름에 재능이 없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 재산을 몽땅 잃었지만 그 덕분에 죽음을 면했다. 그러나 행운은 또 다른 불행의 단초였다. 그는 살아 있었기 때문에 자식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불행과 마주서야했다.
불같은 성격, 과감한 결단은 일본 전국시대 맹장 오다 노부나가가 승승장구한 배경이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는 밝은 눈과 실력이 있었기에 바늘 장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용할 줄 알았다. 마찬가지로 무능력한 자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할 줄도 알았다. 이 남달리 밝은 눈과 불같은 성격은 그가 부하의 손에 죽어야 하는 원인이 됐다. 오다로부터 크게 꾸중들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두려움에 휩싸여 오다를 암살했다. 오다를 키운 것도, 죽인 것도 모두 그의 불 같은 성격과 재능인 셈이다. 재능이 없고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큰 성공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큰 불행도 비껴갈 테니 아쉬워할 일은 아닌 모양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예성강 방사능, 후쿠시마 '핵폐수' 초과하는 수치 검출... 허용기준치 이내 "문제 없다"
與 진성준 "집값 안 잡히면 '최후수단' 세금카드 검토"
[르포] 안동 도촌리 '李대통령 생가터'…"밭에 팻말뿐, 품격은 아직"
안철수 野 혁신위원장 "제가 메스 들겠다, 국힘 사망 직전 코마 상태"
이재명 정부, 한 달 동안 '한은 마통' 18조원 빌려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