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척추장애 앓는 이영희씨와 세 남매

"내 몸 불편하니 애들한테 되레 큰 짐"

▲ 척추장애 4급의 엄마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도 아이들의 부축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엄마의 이런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빠를 극진히 간병하던 엄마를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척추장애 4급의 엄마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도 아이들의 부축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엄마의 이런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빠를 극진히 간병하던 엄마를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00만원 보증금에 월 25만원이 나가는 대구 수성구 지산동의 두 칸짜리 방에는 령은(12·여)이, 동원(10)이, 지수(8·여) 세 남매와 엄마 이영희(44)씨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아빠 곽시영(46·7월 3일 작고)씨와 함께 살던 집이었다. 22일 오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 더위 속에서 엄마는 아빠가 남긴 빚 문제로 답답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동사무소에서 상속포기 과정을 알아봤다고 했다.

"애들 아빠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려고요. 상속할 건 없죠, 당연히. 빚 5천여만원이 전부인데요. 상속포기서를 작성하는 수밖에 없어요."

살아남은 가족들의 유일한 소득은 국가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내주는 생계급여(102만원)와 장애가 있는 엄마 앞으로 나오는 장애수당(3만원). 그리고 어린이재단이 아이들 앞으로 매달 보내주는 14만원이 전부다. 다 합쳐야 한 달에 119만원 정도. 이중 방세와 전기료 등으로 40만원. 엄마의 병원비로 30만원가량이 들어간다. 고정 수입의 절반 이상이 흔적없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세 남매의 방과 후 수업은 주로 교회에서 이뤄진다.

"애들 아빠가 살아계실 때도 그랬지만 애들은 애들이에요. 밝게 뛰어놀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놀기도 하고. 제가 엄마로서 애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죠."

엄마가 아빠의 암을 안 건 결혼 3개월만인 1994년 2월. 코에서 피부조직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 찾은 병원에서는 '상골피부조직암'이라고 일러줬다. 초기 암이라 당연히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검사와 치료에 하루 100만원 가까이 드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후 5년 동안 암재발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았다. 하지만 아빠의 코피는 멎지 않았다. 문제는 2001년에 터졌다. 암세포가 폐로 전이된 것이다.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암세포는 줄어들지 않았다. 병원측은 "암세포를 잘라낼 수 없는 상황이며 잘라내는 수술을 하더라도 암세포가 더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시한부 선고도 받았다. 3~6개월이 한계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7년을 더 살아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았다. 다만 아이들의 기억에는 항상 코피를 쏟으며, 코가 얼굴의 절반이나 되던 아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 남매는 아빠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다. 가족사진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재단이 펴낸 단행본에 실린 령은이의 글을 한 공중파방송의 작가가 놓치지 않고 연락해와 촬영한 것이 있어서였다. 지난해 4월 한 공중파방송에 병마를 견디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돌보는 엄마와 함께 소녀가장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고, 5월에는 공영방송의 성장 다큐멘터리에 같은 소재로 소개됐다. 두 방송을 통해 400만원가량을 후원금으로 받았지만 아빠의 치료비로 진 빚갈이에 소진됐다. 세 아이를 위한 책꽂이는 썰렁했다. 맏이인 령은이는 봤던 책을 보고 또 봐 아예 외울 정도가 됐다.

"책을 사달라는 말은 아예 하지 않아요.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래요. 령은이가 우리 가족 대장이죠. 초교 3학년 때부터 다친 저를 대신해 밥을 해왔어요."

엄마는 3년 전 당한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코피를 흘리는 아빠의 이불을 삶아 빨기 위해 실내 세탁실로 가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돈이 없어 파스만 온몸에 붙이고 만 게 문제를 불렀다. 척추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으로 결국 장애등급까지 받게 됐다.

아빠를 뒷바라지하는 데 진을 뺀 탓일까. 엄마는 최근 사고 후유증이 더 심해져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허리진통제, 수면제, 피부약 등 각종 약을 구비해놓고 있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면 발가락 뼈가 시리다는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인근 병원에 들러야 한다.

"휴, 하늘나라 갈 때 내 아픈 것들이나 좀 가져가지. 가진 것도 없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내놓기만 하고 가더군요."

지난 3일 오후 1시 59분 대구 중구 동산의료원의 한 병실에서 숨을 거둔 아빠는 마흔여섯의 생을 마감하면서 '의학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했다. 빚더미에 허덕이던 아빠지만 각막 기증을 통해 두 젊은이의 눈을 뜨게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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