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기와의 싸움

우리는 허구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소설 쓰고 있네"라며 빈정댄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하면 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창작 또한 긴 시간을 요구한다.

얼마 전 작고한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25년 동안 썼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말이 25년이지 그 세월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제임스 조이스의 '유리시즈'는 7년이 걸렸고, 괴테의 '파우스트'는 20대에 시작해서 80대에 마친 평생의 작품이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인고를 겪어야 비로소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장편소설 한권을 200자 원고지에 베껴도 석 달이 걸린다. 그래도 작가는 한 작품을 쓰고 나면 다음 작품에 매달린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출세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신내린 무당이 아무리 무당을 하지 않으려 해도 무당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에 따라서 밤에 쓰는 사람도 있고, 낮에 쓰는 사람도 있고, 엎드려 쓰는 사람도 있다. 이외수같이 철창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쓰는 사람도 있고, '태백산맥'의 조정래같이 지금도 만년필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마라톤 선수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응원하는 사람이 있고, 같이 달리는 선수가 있다. 공연예술은 화려한 무대가 있고, 음악이 있고, 박수 쳐주는 관중과 호흡을 같이하지만, 작가는 철저하게 자기 혼자다. 내 글을 누가 읽는지 알 수도 없다. 김정구는 두만강을 평생 부르고, 이미자는 동백아가씨를 몇 백번이나 부른지 모른다. 문학은 한 작품을 쓰고 나면 다음 작품에 매달려야 한다. 가수가 부럽다.

작가는 성장과정과 환경이 문학의 토대가 된다. 안데르센은 어렸을 때 주정뱅이인 신기루 아버지가 술이 깰 때까지 한 가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지겨워 재미있는 안데르센 동화가 태어났고, 이혼한 여자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새로운 세계를 원해서 해리포터가 탄생했다.

소설은 길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A4용지 한 장짜리 콩트가 있고, 엽편이 있다. 단편, 중편, 장편, 여러 권으로 된 대하소설이 있다.

어떻게 하면 멀어져가는 독자를 끌어들일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문학인들의 최대과제다. 문학이 발전해야 한다. 문학은 모든 예술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송일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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