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야구공의 빨간 실밥(솔기)은 모두 108개다. 둥근 공은 우주를 뜻하고 실밥에는 108가지의 번뇌가 담겨져 무궁한 변화를 의미한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구종(球種)은 실밥의 변화에서 제 이름을 얻었다. 결국 실밥을 잘 활용하면 좋은 투수가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밥을 영어로는 seam(심)이라 하는데 포심(four-seam)이 바로 직구다. 빠르게 직선으로 공을 날려 보내는 포심은 모든 송구의 기본으로 포심을 정복하지 않고는 야구 선수라 말할 수 없다. 1867년 커브가 처음으로 탄생하기 이전에는 포심(직구)이 투수의 유일한 무기였다. 14세 소년이었던 캔디 커밍스(Candy Cummings)는 1863년 해변가에서 자신이 던진 조개 껍질이 휘면서 날아가는 모습에 커브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후 3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친후 1867년 실전에서 공식적인 커브를 던졌다.
그가 커브를 사용한 애초의 목적은 타자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몸을 향해 공이 날아오면 타자는 깜작 놀라면서 피하게 돼 중심을 잃게 되지만 실제로 공은 휘면서 포수의 미트에 꼽혀 당시에는 마구(魔球)로 불렸다. 아마도 당시의 커브는 오늘날처럼 위에서 아래로 변화하는 궤적이 아닌, 전성기 시절 선동열의 슬라이더처럼 횡(橫)과 종(縱)의 궤적을 함께 한 커브인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 보편적인 구종이 되었지만 제대로 구사하면 가장 치기 힘든 것이 커브다. 그러나 정작 완벽하게 구사하는 투수는 드물다. 날카로운 각도와 완벽한 컨트롤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만 밋밋하게 날아오거나 높은 데서 한가운데로 떨어지면 타자에게는 가장 치기 좋은 공에 불과할 뿐이다. 역사상 커브를 잘 던졌던 투수는 LA 다저스의 좌완 샌디 쿠팩스(Sandy Koufax). "쿠팩스의 커브를 때려내는 것은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 것과 같은 일"로 표현될 정도로 그의 커브는 엄청난 낙차를 자랑했다.
완급 조절의 달인으로 인정받는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전병호는 경상중 시절엔 강속구를 던졌다. 좌완인 데다 2학년 때부터 직구의 구속이 135km에 올라 팀 주전 투수 중 하나였다. 연습 피칭 때는 포수들이 빠른볼에 손이 퉁퉁 붓곤 해 눈치를 보면서 피할 정도였다. 그때 전병호와 배터리를 이룬 포수가 최고봉(전 삼성 포수)이었다.
1년 선배였던 최고봉은 강한 직구만 던지는 전병호가 야속해 어느날 조용히 불렀다. "시합도 나가야 하는데 포수들이 다치면 곤란하지 않겠어? 앞으로 변화구만 던져라." 이후 전병호는 연습 피칭 때 변화구를 주로 연습했고 그때 던지던 볼이 슬라이더였다. 실밥을 잘 다뤘던 전병호는 이내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익혔고 3학년 때엔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승부구로 사용해 중학 시절 이미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프로에 와서 어깨 부상으로 직구의 스피드가 줄자 역회전 싱커를 1년만에 터득했는데 역시 실밥을 다루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밥을 정복한 것이 전병호의 성공 비결인 셈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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