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창작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모두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시점에서 '웬 창작문화'라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이 마치 예쁜 꽃과 같아서 그저 물주고 가꾸고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수고만을 필요로 할 뿐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지배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해 보려 한다.

경남 하동의 최참판 댁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곳은 얼마 전 타계한 박경리 선생의 책'토지'를 바탕으로 드라마의 제작을 위해 지어진 셋트장 인데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하동군의 주요 문화상품 중 하나로 꼽힌다.

소설속의 두 주인공 캐릭터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된다는 동행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학작품 하나가 이 마을을 얼마나 생기 있고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문화란 사회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써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즉 문화는 하나의 사회가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인간이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하고 그 생각을 언어를 통해 기록, 전달 그리고 학습함으로써 그것을 같은 세대와 후 세대에 전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즉, 각 세대마다 새로 첨가되어 축적되는 정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적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으로 인해서만 가능하다.

유럽을 돌아보면 로마는 그 찬란한 문화유적을 통해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 인파를 끌어 모으고 있으며, 불과 35년도 채 살지 못했던 모짜르트의 작품들이 오늘날, 아니 오늘날까지 지구상에서 창출해 낸 부가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르고도 남음이 있다.

영국의 경우, 심지어 어느 시나리오 작가 혹은 영화소품 제작자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음이 분명한, 영화 '007' 에 사용된 신무기나 소품들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생산되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작가의 작은 상상력 하나가 과학자나 기술자의 손을 거쳐 상업화 되면서 그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지난 해 서울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몇 차례 지원금에 대한 심의를 한 적이 있다. 창작품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 중에서도 초연되어지는 작품들에 특별히 가산점을 주도록 주장했으며, 그 후 우리 지역작품을 심사하면서도 이러한 의견을 관철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한 시대와 지역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결국은 창의적인 사고와 그 결과인 창작품에서 나온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실정을 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방에서는 그러한 문예지원금을 신청조차 할 수 없었거니와 설령 할 수 있었다 해도 심의위원들조차 지방에 대해서는 별다른 배려가 없었던 점을 생각해 볼 때에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자체적으로 창작사업을 지원, 관리할 수 있도록 했던 그의 지방분권 정책에만은 지금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작은 바닷가 도시 통영, 그곳에 오늘날 세계적인 음악제가 열리고 해마다 전 세계의 젊은 음악인들이 몰려들게 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 생전 그가 70회 생일파티에서 직접 들려 준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한번은 선생이 독일 어느 지방에서 작품 발표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한 노인이 약간의 망설임 끝에 선물을 하나 건네주더란다. 호텔로 돌아와 그것을 풀어본 선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그가 독일에서 활동 했던 모든 기사들이 스크랩 된 파일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서양음악의 역사는 작곡가의 역사(창작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독일은 서양 고전음악사의 종주국으로 인정받는다. 작품을 만드는 진정한 예술가를 바라보는 독일 한 노인의 안목과 마음이 못내 아쉽기만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까?

임주섭 영남대교수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지지율 열세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내부 분열이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대장동 사건 국정조사 요구 속에 당의 단합이 요...
정부는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과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거래를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기금운...
과잉 진료 논란이 이어져온 도수치료가 내년부터 관리급여로 지정되어 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될 예정이며, 이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50대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