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산 야구장은 난리가… 대구는 와 조용하노?

▲ 대구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 출범 원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우승 후보로 꼽혀온 전통의 강호다. 대구시민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삼성을 응원하며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 대구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 출범 원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우승 후보로 꼽혀온 전통의 강호다. 대구시민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삼성을 응원하며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지금은 그 어디서~내 생각 잊었는가♬'

올 시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 중 하나인 '부산 갈매기'는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을 넘어 전국의 야구장에서 메아리쳤다.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 터라 롯데 팬들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들어가고 야구장을 향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특히 롯데가 야구만 했다 하면 사직구장 일대는 난리다. 경기가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들, 수업을 제친 채 교복 차림으로 뛰쳐나온 여중생, 롯데 유니폼을 맞춰 입은 젊은이들로 북새통이다. 무엇이 세대를 넘어 그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았을까? 대구를 연고로 하는 '전통의 강호' 삼성 라이온즈와 비교해 그들의 야구 열기를 들여다봤다.

◆롯데발 흥행 돌풍

20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 대혼란이나 세계의 종말이 온다느니 갖은 풍문이 떠돌았지만 21세기에도 사람들의 일상사에는 변화가 없었다. 물론 1970년대 나돌던 공상과학만화에서처럼 날아다니는 차가 거리에 넘쳐나지도 않았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도 변함없이 열렸다. 다만 몇 개 팀에는 21세기와 함께 악몽이 찾아들었다. 특히 롯데가 그랬다.

'8888577'은 어느 집 전화번호가 아니다. 롯데와 충성도 높은 롯데 팬들의 가슴에 깊이 남겨진 상처다. 2001년 이후 2007년까지 8개 구단의 순위 다툼 속에 롯데가 정규 시즌에서 기록한 순위이기도 하다.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이 함께 인터넷상에서 자조섞인 표현으로 '엘롯기 동맹'이라고 부를 정도였지만 LG와 KIA의 순위는 그보다 나았다.

하위권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던 롯데는 올 시즌 드디어 기지개를 켰다. 시작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제리 로이스터)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부터. 로이스터 감독은 패배에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매년 봄에만 '반짝'하던 롯데의 돌풍은 가을까지 이어졌다.

롯데의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가을 야구'를 염원하던 팬들의 기대감도 커졌고 야구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롯데의 올 시즌 63차례 홈경기 누적관중은 137만9천735명. 한 구단이 홈에서 그러모은 관중으로는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관중기록이다. 지난해(75만9천513명)에 비해 무려 81.6%나 치솟은 숫자다.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산다

롯데가 10월에 야구를 하게 되면서 사직구장 인근 고교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이 야구에 쏠려 11월에 치러질 대입시험 성적이 '확' 떨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하지만 이 같은 팬들 덕분에 3만석인 사직구장은 홈경기 때 21번이나 매진을 기록했다. 1995년 이후 13년 만에 프로야구가 다시 500만 관중을 돌파한 데에도 부산의 힘이 컸다.

명문 구단 삼성이나 KIA를 거느린 대구나 광주 시민들이 '구도(球都)=부산'에 쉽게 동의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롯데=부산' 공식에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통계다. 롯데가 8년 만에 가을 잔치 초대장을 거머쥔 것만으로는 그토록 뜨거운 부산 사람들의 '롯데 야구'에 대한 열정이 설명되지 않는다.

일단 사직구장의 독특한 응원 문화가 사람들을 끄는 힘일 게다. 신문지를 갈갈이 찢어 꽃술처럼 만든 뒤 흔드는 일명 '신문지 응원', 쓰레기를 담으라고 나눠준 주황색 비닐 봉투에 바람을 불어넣은 뒤 흔들거나 머리에 쓰는 '봉다리 응원'이 대표적. 경기 내내 선수별로 만든 응원가와 함께 쉬지를 않으니 야구를 잘 몰라도, 응원만으로도 흥이 난다.

또 부산이 지리적으로 일본과 인접해 1960~70년대 위성방송을 통해 일본 프로야구를 접하기 쉬워 일찍부터 야구를 즐기게 됐다는 점, 순간순간 갑자기 달아오르는 야구의 특성이 바닷가 사람들의 기질과 잘 맞다는 점을 드는 이들도 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던 꼬마는 어느새 어른이 됐고 그들은 야구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추억을 함께 느낀다.

◆줄어든 대구의 야구 관중

삼성은 롯데와 함께 프로야구 개막 이후 팀 이름이 변치 않은 '유이'한 팀이다. 언제나 우승 후보로 꼽혔고 지역 출신 스타가 즐비했으며 올 시즌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록도 썼다. 대구 야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할 성적. 팬들이 포스트시즌 참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대구시민야구장의 열기는 부산과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야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만 그 관심이 야구장 1만2천석을 가득 메우지는 못한다. 1995년 62만3천970명(매진 37회)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은 것이 최다 기록이다. 2006년에는 24만7천787명(매진 2회), 지난해엔 33만6천936명(매진 4회)에 그쳤다.

이를 두고 삼성 관계자는 "2005, 2006년 정상에 오르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팬들의 갈증이 풀렸고 강력한 타선으로 상징되는 삼성의 야구 스타일이 '지키는 야구'로 바뀌어 극적인 요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턱없이 낙후된 야구장 시설, 선수와 팬들간의 접촉 부족 등도 그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구단이 그동안 지역의 학교, 관공서, 기업 등과 연계해 관중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등 열심히 노력했지만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롯데 팬들의 열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삼성은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열정적인 팬을 거느린 롯데와 맞서야 한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의 승리를 위해서는 팬들의 힘이 필요하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