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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미스킴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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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1970년대에 가수 윤형주가 불러 히트 쳤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세칭 '7080세대'에겐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하는 노래다. 특히나 보랏빛 라일락이 꽃구름을 이루는 봄날이면 자주 흥얼거려지곤 한다. 한데 봄의 서정을 만끽하게 하는 이 꽃나무가 원래는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의 한국 토종에서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미국 꽃이 돼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좀 씁쓸해진다.

1947년 미국 화훼업자가 국내에서 씨를 받아 육종 개량한 뒤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담한 樹形(수형)과 진한 향내의 이 꽃나무는 조경용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단숨에 미국 라일락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는 것.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일락 품종으로 자리매김했고, 1970년대부터는 우리나라도 비싼 로열티를 물어가며 역수입하고 있다.

한국 토종에서 국적이 세탁돼 버린 식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구상나무도 1910년 한라산에서 미국으로 밀반출된 뒤 20여 종으로 개량돼 유럽 등지의 크리스마스 트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자생 식물 원추리의 한 종류도 1930년대에 미국으로 밀반출돼 육종 개량된 뒤 '데이 릴리'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가 태무심한 가운데 미국'러시아'영국'일본 등 세계 각국들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종자 전쟁을 시작했다. 장차 '씨앗'이 엄청난 '황금알'이 될 수 있음을 얄미울 만큼 재빨리 꿰뚫어 본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각각 20만~40만 점이 넘는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세계적 종자 회사들은 각국의 토종 씨앗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환경부는 5일 309종의 우리 토종 동식물을 '국외 반출 승인 대상 생물자원'으로 지정했다. "해외로 무분별하게 빠져나가 외국산으로 둔갑하거나 신품종 개발 등을 통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식물 99종과 송사리'버들치 등 사라져 가는 어류 30종, 곤충 180종이 포함돼 있다. 해외 반출 금지 규정을 어길 경우 징역 등 법적 제재를 받게끔 돼 있다. 뒤늦기는 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우리 토종 생물 자원을 보호하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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