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4천원/383p
요즈음은 스크린 쿼터 제도를 축소, 폐지해도 한국영화는 괜찮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외국영화와의 정정당당한 경쟁이 오히려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SK 와이번즈의 김성근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의 용병 제한을 없애야 한국 야구 선수들의 감춰진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역시 무한 경쟁만이 진정한 경기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1990년대 초에 프로야구 용병 제한과 스크린 쿼터를 없앴다면 오늘날의 '야구 금메달'의 영광이나 『왕의 남자』의 성공 따위는 매우 요원했을 거란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쟁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기반이 갖추어졌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의 야구 선수, 한 사람의 복싱 선수조차 세심한 보호 속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는 루키 리그,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를 거친다. 복싱 챔피언 도전자는 의도적으로 자신보다 약간 수준이 낮은 선수만 골라가며 경기하여 승수와 자신감을 쌓아간다.
초, 중, 고가 있고,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이 있다.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도 처음부터 다짜고짜 통틀어 경쟁하지 않는다. 사자 새끼조차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질 뿐, 처음부터 하이에나와 싸워서 승리하라고 강요받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의하면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처음부터 자유무역의 무한 경쟁으로 밀어 넣는다.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심지어는 한국도 철저한 보호무역과 공적자금, 아이디어 도용을 통해서 성장했는데, 이제 그들은 그 전과를 싹 덮어버린 채 '자유무역만이 유일한 길' 이라고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도국 몰아세우기'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선진국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잠재적인 제 3세계의 거대한 시장을 죽여 버리면, 오히려 선진 기업들과 자본들에게도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역사에 근거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나아가 수정된 정책이 궁극적으로 보다 성숙한 '자본주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장하준은 캐임브리지 대학 교수이다. 먼 옛날 동 대학 출신의 한 위대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불온'(?)으로 낙인찍힌 책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성토한 적이 있었다. 무려 400년 전이다.
모든 주의와 주장을 이 땅 위에 자유롭게 활동하게 두면 진리도 거기에 있을 터인데 검열하고 금지하면서 우리는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부당한 일을 하고 있다. 진리와 거짓이 서로 다투게 하라. 어느 누구가 자유롭고 개방된 대결에서 진리가 패배한다고 본단 말인가? 『아레오파지티카』 존 밀턴 지음/임상원 옮김/나남/1만원/286p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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