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드높건만 가을 노래는 도로 위를 뒹구는 마른 잎처럼 쓸쓸하다.
漢(한) 武帝(무제)가 사랑했던 이부인(李姸)은 절세미녀였다. 황제는 지방을 순행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선상 연회를 베풀면서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니 잊을 수가 없구나!' 하는 노래를 부른다. 바로 秋風辭(추풍사)다.
노래 속 이부인은 천하 絶唱(절창)이자 장수인 李延年(이연년)의 동생이었다. 그는 동생을 두고 '눈길 한 번에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니 나라가 기운다네'라고 노래했다. 傾國之色(경국지색)이라는 것이다. 이부인은 과연 아름다웠고 또 노래도 잘 불렀다. 늙은 황제는 곧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가인박명이라던가, 그녀는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한 무제는 사기열전을 쓴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렸고 황후 여럿을 자살케 하거나 죽인 냉혹한 군주였다. 그가 죽은 지 7년이나 지나도록 이부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 데서 이부인의 미모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부인의 궁정 생활은 황후와의 갈등 등으로 편치 못했던 것 같다.
한 成帝(성제)때 반첩여와 조비연은 같은 후궁이었다. 황제는 처음엔 반첩여를 총애했으나 차츰 조비연에게로 사랑이 옮겨갔다. 황제의 사랑이 변할까 두려웠던 조비연은 반첩여를 무고하여 옥에 갇히게 한다. 반첩여는 나중에 혐의가 풀렸지만 더 이상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부른 노래에 자신의 처지를 가을 부채(秋扇)에 비유한다.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는 철이 지나 쓸모없어진 물건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다투는 것이 궁중 여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 모두는 잊히지 않으려, 사랑을 잡으려 발돋움하다 스러지는 것 아닌가. 이 가을, 우리는 우리 모두의 연인을 떠나보냈다. 그래서 유별 쓸쓸하다.
오늘은 제비와 기러기가 서로 자리바꿈한다는 寒露(한로). 자리를 바꾸고 떠나보낼 이는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가을 부채꼴이 되기 전에 스스로가 물러나는 것도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잊혀지거나 또는 잊어야 한다.
이젠 선풍기를 들여놓고 난로를 꺼내야 할까 보다.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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