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들고나기 쉽고, 돌아다니기 편해야 한다. 대구 도심은 어떤가. 몇 발짝만 걸으면 여지없이 막히고, 사람보다는 차량이 먼저 지나간다. 걸어서는 접근하기도 어렵고 다니기도 어렵다. 도심 곳곳의 현황과 문제점, 대안 등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지도 하나에 모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투성이다.
취재팀은 이달 초 서울 도심의 인사동과 명동을 찾았다.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던 두 곳이 사람으로 넘치고 상권이 살아난 이유는 사람들에게 '걷는 길'을 돌려준 데서 찾을 수 있다.
◆걸을 수 있어야 도심이 산다
인사동은 평일 차량 통행이 일부 제한되고 주말에는 아예 '차 없는 거리'가 된다. 명동 역시 롯데백화점 건너편 아바타몰~명동성당 260m 거리를 주말에는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를 확대, 올해 말부터 평일에도 명동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1천700여m의 명동 관광특구 일대를 걷기 편한 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 17일 취재팀이 찾아간 일본 교토 도심. 보도와 차도가 턱으로 분리된 곳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차도와 보도를 오가며 차량들과 섞였지만 경적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된 기온의 거리는 차량 통행이 허용돼 있지만 지나는 20여분 동안 우편배달 차량 한 대 빼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 길로 갖가지 얼굴색의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지나고 있었다.
일요일인 지난 19일 낮 대구 약전골목. 대부분의 업소가 문을 닫았고, 인적도 드물었다. 길 양쪽으로 불법 주·정차 차량들만 빼곡했다. 대구시는 약전골목을 '보행천국'으로 만들겠다며 화강석으로 바닥을 덮었지만 '보행지옥'이라는 감투만 얻었다. 주 고객층이 환자나 노령인구이며, 한약을 싣고 내리기 위해 차량이 많이 오갈 수밖에 없는 사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발상을 바꿔야 도심이 달라진다
대구 도심에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진 건 벌써 여러 차례. 1997년에 수립된 '2001년 중구 권역별 발전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차 없는 거리'였지만 현재 도심의 보행자 전용거리는 동성로뿐이다. 이후로도 도심 교통개선 계획과 교통종합대책 등이 '보행권 확보, 도심 승용차 진입 억제'를 내걸었지만 번번이 헛구호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점진적인 방안에서부터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하게 제시했다.
먼저 기존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적용 가능한 부분부터 바꿔가야 한다는 주장. 약전골목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별 보행 패턴을 분석한 뒤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제대로 보행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행자 전용거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동성로 상권 활성화를 위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김기혁 교수는 "현재로선 옛 동인호텔 앞길을 보행자 전용으로 바꾸는 것이 출발점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도심 내부를 연결하는 횡단보도 설치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바뀌는 중앙로는 물론 태평로와 국채보상로, 달구벌대로에도 횡단보도를 과감하게 설치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심을 남북으로 가르는 태평네거리~계산오거리, 봉산육거리~교동네거리 구간은 도로 폭을 줄여 보행권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현재의 왕복 4차로를 2차로로 줄이는 대신 인도와 녹지공간을 확대하자는 것. 차량 통행은 달성네거리~동인네거리~삼덕네거리~신남네거리를 순환하는 도로로 우회시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시들은 벌써 '도로 다이어트(Road Diet)'를 시작했다. 차로의 군살을 빼고 사람들에게 길을 돌려주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광화문 앞 세종로 16차로를 내년 6월 말까지 10차로로 줄이고 그 자리에 시민들이 편하게 걷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광장을 건설한다. 인천시, 고양시, 창원시도 기존 차로를 줄여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계명대 도시공학과 김철수 교수는 "동성로, 북성로, 종로골목 등 도심 남북축과 태평로, 국채보상로, 달구벌대로 등을 걸어서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도심 속에 보행자 우선 거리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도심 재창조를 위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공동기획:AT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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