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금오산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모르는 법이다. 구미 금오산도 그렇다. 연간 300만명이 찾을 만큼 널리 알려진 명산이지만 정작 대구경북 등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많이 들어본 탓에 정상 한번 밟아보지 않고도 마치 금오산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다.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황금빛 까마귀(금오)가 저녁노을 속에 금빛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영남8경 또는 경북8경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1970년 6월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금오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는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체력과 시간을 꼼꼼하게 따져 공원관리사무소~대혜폭포~금오산성 내성~정상(1시간 40분), 공원관리사무소~대혜폭포~성안~정상(2시간), 공원관리사무소~법성사~정상(2시간 45분), 자연환경연수원~성안~정상(5시간) 4가지 코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취재팀이 선택한 등산로는 대혜폭포에서 금오산성 내성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대혜폭포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걸어서 30분 남짓 걸리는 시간이 케이블카로는 단 5분. 정상은 꼭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넉넉치 않은 등산객에게 케이블카를 추천한다.

하지만 해발 976m의 금오산을 정복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금오산은 기암괴석이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계곡이 발달한 산. 해발고도(현월봉 976m)는 그리 높지 않지만 오랜 침식작용에도 깎이지 않는 아주 단단한 유문암과 안산암 등 화산암류로 이뤄져 있다. 산의 높낮이 차가 심해 멀리서도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기 때문에 평지나 여느 산길과는 비교가 안된다.

하산길에 만난 20대 등산객은 연신 숨을 헐떡거리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울상. 여차하면 산행을 포기할 태세라 '금방'이라고 달래며 곧바로 산을 내려왔지만 이제 겨우 중턱 지점이다. 남성적 기상이 넘치는 금오산은 골짜기마다 힘과 기백이 서려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지만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조금은 '고생스러운' 거친 산이다.

관리사무소~대혜폭포

관리사무소를 지나 케이블카에 오르면 금오산성 외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성터로, 조선시대에 4차례에 걸쳐 새로 쌓은 산성이다. 영조 때에는 총 병력이 3천 500여명에 달했다고 전해질 만큼 국방의 요충지로 이름높았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내·외성벽의 전체 길이는 무려 6.3㎞에 달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면 곧 해운사다. 근세에 세워진 사찰이긴 하지만 대혜폭포 왼쪽 아래 웅장한 기암절벽을 등져 경관이 빼어나고 불기 2992년에 봉안된 칠성탱화가 유명하다.

해운사를 지나면 도선굴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등산로를 비켜나 낭떠러지 바위길로 쇠난간을 잡고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도선굴은 금오산의 빼어난 산세를 감상하기에 제격인 곳. 대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신라말 풍수대가로 유명한 도선선사가 도를 얻었다고 전해지는 천연동굴이며 고려시대엔 야은 길재 선생이 수도처로 삼기도 했다.

도선굴을 돌아나오면 해발 400m 지점에 28m의 거대한 폭포가 장관이다. 대혜폭포다. 가뭄 때문에 물길은 볼 수 없었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기암절벽만 해도 눈을 뗄 수 없는 절경이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산을 울린다 해 명금폭포라 부르기도 하는 대혜폭포는 금오산의 유일한 수자원으로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이 떨어지면서 이룬 연못과 주변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

대혜폭포~정상

금오산 등산은 대혜폭포부터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만하던 지형이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기 때문. 여기서부터 철기둥을 쇠줄로 이어놓은 난간까지 길은 할딱고개라는 별칭이 있다. 정상까지 가는 1단계 고비로, 등산로 가운데 가장 힘들고 숨이 차다는 악명 높은 고개지만 '할딱고개' 푯말 바로 위로 너른 바위가 펼쳐지고, 그 바위 위에 서면 금오산 저수지와 구미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가슴 속까지 탁 트이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이곳까지 왔다면 꼭 바위 위로 올라가 보길 권한다.

정상까지 가는 2단계 고비는 금오산성 내성부터 다시 시작된다. 잠시 이어지는 평평한 흙길이 다시 급경사의 바위 길로 바뀌면서 약사암까지 험난한 등산로가 계속되는 것. 하지만 산을 오르는 묘미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인생의 진리 때문이 아닐까. 약사암 일주문을 통과해 계단을 내려가면 수십미터의 기암괴석이 뒤를 바치고 있는 암자와 바위 산에 핀 단풍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천혜의 비경을 연출한다. 약사암에서 산을 내려다 보면 멀리 구미시가지와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맞은편 계곡 너머 나무 다리로 연결된 범종각에 절로 감탄사가 절로난다.

약사암을 빠져나오면 바로 산 정상이다. 길을 따라 70,80m쯤 올라가면 초생달이 걸려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해 '현월봉(976m)'이라는 비석을 볼 수 있다. 금오산에 올라 산세를 감상하기 좋은 곳은 도선굴, '할딱고개' 너른바위, 약사암과 함께 이곳 현월봉을 꼽을 수 있다.

채미정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야은(冶隱) 길재가 고려의 옛 도읍지인 개경을 둘러보며 느낀 망국의 한(恨)과 인간사 덧없음을 노래한 시조다. 조선 세종1년(1419)에 별세한 야은 선생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이라 불렸던 인물로, 조선 개국 이후에도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금오산 산행에 앞서 금오산도립공원 초입에 펼쳐져 있는 금오지를 돌아 만나는 채미정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 채미( 採薇)란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말이며, 1768년(영조 43년)에 지은 채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로 총 열여섯 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 받치고 있다.

금오지를 따라 채미정에서 금오산관광호텔까지 이어지는 길은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특히 1975~91년 영업하다 17년간 문을 닫은 금오산광광호텔이 내년 2월말쯤 재개장할 예정. 호텔시설은 물론 주변의 수려한 조경에다 케이블카까지 재단장해 금오산 등산의 재미를 더할 전망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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