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오바마 외교정책과 한국

미국이 건국 후 242년, 흑인노예해방 후 14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 후 45년, 부시 공화당 행정부 출범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흑인후보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처럼 역사적인 사건이니만큼 미국 내부에는 혁명적 변화가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의 정치참여가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정치적 지형이 달라지며 정책적 방향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단기적으로도 그를 당선시킨 정치적 환경을 반영하여 큰 정책의 전환이 예상된다. 대내외정책을 막론하고 그렇다.

그를 당선시킨 배경에는 미국정치의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1998년 탄핵파동에서 2008년 금융위기 사이에 9·11테러, 두 차례의 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자연재해가 있었다. 미국 예외주의라며 選民(선민)의식에 빠져있던 미국민들에게 테러공격과 그 성공소식에 춤을 추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미국민들은 일종의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깊은 실망과 좌절에 빠졌다. 실망하고 좌절해도 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미국인들은 40대의 젊음과 유색인종이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가지고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 후보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유례없이 높은 투표율이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외교적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에 대한 세계적인 '민심의 이반'을 초래한 공격적, 군사적 일방주의를 지양하고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외교를 펼칠 것이다. 대결보다는 대화를, 혼자서 나서기보다 여럿이 국제기구를 통해 나설 것이다. 그의 공약이자 민주당의 전통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입장도 그렇다.

북한의 핵무장은 전 세계적인 핵 비확산체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해법은 대결보다는 대화를, 군사보다는 외교를 선호한다. 다자주의적 틀인 6자회담을 유지하되 필요하다면 정상외교도 마다 않는, 보다 적극적인 관여정책을 표방해 왔다. 그렇게 볼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논의됐던 2000년 10월 상황으로의 복귀도 떠올려봄 직하다. 심지어 그 이후 그에 아우른 남북관계의 개선 혹은 통미봉남에 따른 악화를 점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성급하다.

우선, 북핵의 진척상황이 그때와 다르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진 이래 북한은 핵개발을 가속화하여 2006년 10월 핵실험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는 동결된 핵시설의 완전해체가 관건이었지만 지금은 몇 개인지 모르지만 만든 핵무기를 찾아 폐기해야 한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언제 북핵문제에 주목할지 알 수 없다. 우선 시급하고 중대한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하느라 외교에 투여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시간을 이라크전 등 외교적으로, 또 국내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에 할애해야 한다. 정치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북한문제에 언제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목하지 못하는 동안 북핵 프로그램은 굴러가서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 그의 주목을 끌기 위해 북한이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그게 북한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북핵 해결 프로그램이 다시 돌아가더라도 조기타결에 대한 기대는 어렵다. 민주당 정부가 "물렁하다"고 판단하고 북한이 요구조건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통적으로 외교문제에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좁다. 이 둘이 맞물리면 타결은 더욱 지연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처럼 변수가 많은 몇 달 후를 내다보기보다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을 챙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2005년 9월의 합의 이후 지금까지 6자회담 과정은 적지 않은 것들을 다져왔다.

내가 김정일 위원장이라면 지금 '통 크게' 핵문제를 해결하고, 차기 오바마 행정부와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협상할 것이다. 물론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김태현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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