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고층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살다가, 산촌으로 주거를 옮긴지도 5년이 되었다. 지금은 집들이 서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고적한 산 중턱의 외딴 집이었다. 성냥갑 두 개를 포갠 것 같은 이 납작한 시멘트 집을, 지인들의 자문을 얻어서 6개월 동안 직접 지었다. 소박한 작업실 하나를 만드는 것이 그 때의 꿈이었다. 화실이 완성되면 그 곳에서 담백하고 명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보리라 생각했다.
평소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을 선호했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산촌으로의 이주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 이를테면 출생이나 결혼, 이혼, 은퇴, 죽음등과 같은 한 개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 내 삶에도 그러한 순간의 위기가 닥쳐서, 가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치유할 힘이 필요했고, 나는 그것을 전원 속에서 찾고 싶었다.
산 속으로 들어온 후부터, 즐겨 듣던 음악들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뒤뜰을 가득 채운 개울물 소리와 바람 소리, 새벽 숲을 물고 날아드는 산새들의 지저귐, 정오쯤 하늘로 튕겨 올라가 한없는 푸르름을 만드는 산의 깊은 정적들, 내 메마른 실핏줄 속으로 아직 뛰고 있는 생명의 힘찬 맥박 소리 같은 것들이 악기 소리 보다 더 선명하고 곡진하게 울려왔었다. 물론, 준비 없이 뛰어든 전원생활로 부딪는 일상적인 고충도 많았다. 직접 소각 처리해야하는 쓰레기더미, 잡초와의 전쟁, 야생벌레들, 천둥 번개에 망가지는 컴퓨터, 겨울 폭설에 꼼짝 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지하수 모터기의 고장으로 물이 끊겨 악취를 풍기는 변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세대주였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층아파트로 돌아가지는 못 할 것 같다.
자연 속에 우울증은 없고 숲은 치유의 종합병원이라던가, 빈 생수통 구르는 소리조차 바람의 청정한 음표로 되살아나는 이 곳 산촌의 가을이 깊고, 그윽하다.
백미혜(시인·화가·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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