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이 어떤 돈인데…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큰 돈을 밀어넣었는지…."
24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곡동의 한 빌딩 2층 사무실. 하루아침에 잔칫집에서 초상집으로 바뀐 이곳에선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단계 사기 사건이 터지기 전이던 지난달까지 이곳은 꿈에 부푼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사업자금, 노후대비자금, 심지어 자식 집마련을 위한 자금까지 돈이 생기는 대로 차곡차곡 쌓아왔다.
성인 한 명이 누우면 딱 알맞은 크기의 안마기기. 찜질방 등에서 1천원짜리 지폐를 넣으면 10분 정도 전신을 마사지해주는 이 기계에 수만명이 수조원의 돈을 밀어넣었다. 결과는 풍비박산. 통장은 비었고 미래의 꿈은 악몽이 됐다.
피해자가 수만명이지만 직접 안마기기를 확인한 이들은 찾기 힘들었다. 실체없는 기기 대여료는 후발 투자자들의 투자금액으로 메운 것이었기 때문. 더이상 투자자가 없을 경우 즉각 터질 수밖에 없어 '폭탄돌리기'라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대구의 본사가 터지기 직전 서울·인천의 자금이 막혔다고 입을 모았다.
다단계에 대한 개념이나 경험이 전무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4년간 지속돼온 업체에 무한 신뢰를 보냈다. 연 35%에 이르는 이자는 불경기에 떨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폭탄돌리기'의 정황은 1년 전 기자가 이 사무실을 찾았을 때부터 짐작됐던 바였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는 사업에 투자해 배당금을 받고 있으니 관여하지 말라"며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외려 그들을 설득, 함께 투자하자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더 많은 피해자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와중에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사기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과 관계당국은 사기 핵심 세력 검거와 조사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이참에 다단계 사기 사건의 뿌리를 뽑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건 발생 때마다 가정이 파탄났다는 피해자가 부지기수이지만 사기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벼워 제2, 제3의 사건을 부추긴다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일 때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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