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못다한 이야기] 김수용이 만난 사람들

◆짧지만 강렬한 만남

18대 총선이 끝난 직후 만난 유시민(49) 전 국회의원. A4 2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사전 자료를 검토한 뒤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의 내공은 과연 강했다. 정치인 특유의 몸에 밴 가식을 우려했지만 그런 걱정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특유의 솔직 담백함에 매료됐다. 전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적잖게 마신 그는, 기자가 겸연쩍게 내민 '소주 폭탄주'를 시원스레 들이키더니, 상당히 맛있다며 한 잔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요새는 안 될 것 같아요"라는 그의 말은 한동안 인터넷을 통해 회자됐다.

아프리카의 야생을 떠올리게 했던 사진작가 김중만(54)은 30여분의 짧은 만남이지만 긴 여운을 갖게 했다. 그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김중만과 함께하는 월드 슈퍼카 코리아 투어'에 강연겸 사인회를 위해 찾아온 그에게 사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피곤하다는 것. 포기할 수 없었던 기자는 무작정 찾아가 팬들 앞에 선 그에게 질문을 쏟아댔다. 짐짓 당황스러워하면서도 팬들의 시선이 두려웠던지(?) 멋진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사인회가 끝나고 팬들이 돌아서자 그 역시 언제 기자를 봤냐는 듯이 돌아섰다. 한 점 아쉬움도 남기지 않은 채. 일정에도 없던 인터뷰를 했으니 입맛이 써도 돌아설 수밖에.

◆쓴 말보다 더 많았던 쓸 말

소설가 김홍신(61)과는 서울 서초동 자택 서가에서 만났다. 150분 간 이어진 줄다리기 인터뷰 끝에 작성한 기사 초고만 원고지 무려 200여 매. 그것을 10분의 1로 줄이는 작업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웅혼하고 장대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전하는 강한 떨림은 책상 너머 기자에게 고스란히 전율로 전해졌다. 신작으로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기다려진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41) 대표와의 인터뷰는 기대와 실망, 그리고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의료보험 민영화'를 직설적 화법으로 비판했고,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보험업계의 '금서'를 쓰기도 했던 인물. 기대와 달리 외진 오피스텔의 자그만 사무실을 보면서 실망했지만 2시간의 인터뷰가 짧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내던 그를 보며 잠시 겉으로 판단했던 기자가 부끄러웠다. 달리 대접할 게 없다며 사무실 한 켠에서 쪄낸 강원도 찰옥수수를, 기차 시간 때문에 맛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랜드 체이스'로 유명한 게임업체 KOG 이종원 대표는 어떻게 보면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이를 위한 투자와 연구, 결실을 맺기 위한 마케팅.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만남은 곧 배움의 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다름없다. '말총머리 스피드광'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치과의사 임무영(57)씨와의 만남은 솔직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솔직한 나머지 기사마저 숨김 없었던 탓에 오히려 기자가 항의 전화와 메일을 받기도 했다. 계명대 신일희(69) 총장과의 인터뷰만 해도 그렇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지만 다분히 공격적 질문이 이어졌고 난처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초지일관 담담하게 소신을 피력했다.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은 기자의 몫도 아니며 동시대에서 내려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슬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남근'을 조각하는 외팔이 조각가 정태원(55)씨에게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고, 14년간 한 프로그램을 맡았다가 '짤린'(?) 뒤에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않던 방송 진행자 김영주(40)씨에게 열정과 사랑을 배웠다. 미국인에게 영어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 홍효창(38)씨. 꿈을 찾아 떠난 미국에서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던 그는, 졸음이 쏟아지는 밤이면 허벅지를 펜으로 찍어가며 공부를 했단다. 인터뷰를 끝내고 보니 기자와는 친구의 친구. 가을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와는 진한 소주 한 잔 나누며 말을 트기로 했다. 대경대학 강삼재(56) 부총장은 권력의 무상함을 담담히 들려주었고,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김&송 성형외과 김덕영(56) 원장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두 사람 모두 소주 한 잔 기울이자고 해 놓고 아직 연락이 없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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