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서 재난을 배운다.' '재난은 잊힐 때 다시 찾아온다.'
지난 12월 29일 공식 개관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동구 용수동)가 내세우는 구호이다. 안전테마파크 건립은 지난 2003년 발생한 2·18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건립이 추진된 이래 5년만의 결실이다.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하고 시민들이 안전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부지 선정과 착공까지는 물론 개관 이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 시민들에게 안전교육을 하고 안전문화 정착에 기여할 의미 있는 시설이다. 개관 직전인 12월 26일 안전테마파크를 방문해 구석구석의 다양한 시설을 둘러봤다.
◆지하철 화재 참사로 시작
안전테마파크 방문객은 먼저 1층 안전인포데스크에서 등록해야 한다. 사전 예약한 방문객은 개인 위치인식·평가장비(RFID)를 부여받아 설치한다. 이 장비를 통해 방문객은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안전지수를 평가받게 된다. 체험이 끝난 뒤엔 이 점수를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오리엔테이션 홀에서 교육 및 체험 시 주의사항 등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으면 본격적으로 안전체험 교육이 시작된다.
기본교육 후에 생명터널(계단)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터널에 들어서니 동작을 자동인식해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교육 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 '지하철안전 전시관'의 시작은 '2·18 재난 타임머신'. 24인승 4D 리프트를 타고 진행되는 교육이다. 안전바를 내리자 스크린상에 2·18 지하철 사고 직후의 영상자료가 나왔다. '사망 192명 부상 151명'. 2003년 그날이 떠오르며 기분이 숙연해졌다. 안내를 맡은 추주희 교육주임은 "볼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다. 신달자 시인의 추모시를 볼 때마다 울고 있다"고 했다.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이 장면 장면 흐르면서 '당신은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동영상이 끝났다. 그러자 리프트가 하강했다. 이어서 사고 당시를 재연한 동영상이 나왔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당시의 사고 전동차 내부. 방화범이 인화물질이 든 통을 들고 라이터로 위협하는 장면, 승객들이 놀라며 주춤거리는 모습 등이 재연됐다. 지하철 내에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고 연기가 치솟는 장면이 나오자 실제로 스모크가 뿜어져 나와 현장감을 더했다. 우왕좌왕하는 승객들이 문이 열리지 않자 절규를 하는 모습에 가슴이 울컥해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아빠 도와줘"라며 울먹이는 소녀. 신달자 시인의 추모시 '당신은 그날을 기억하십니까?'가 흘러나오고 '잊지 않겠습니다'란 다짐과 함께 동영상은 끝을 맺었다.
타임머신 방을 나서니 전면에 사고 직후 중앙로역사 화재현장을 복원한 현장이 나왔다. 화재로 온통 시커멓게 그을린 사고 전동차 1079호 1량도 전시 중이었다.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차량엔 잔해만이 남았다. 찌그러진 차량은 영락없는 고철 신세. 사고의 처참함을 담고 있는 현장이다. 역사 벽면과 기둥 군데군데에는 추모객들이 남긴 글들이 가득했다. '우리 정은아 엄마가 너무 미안하구나'라는 추모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실제 상황 연출해 탈출 체험
다음은 '미션 지하화재를 탈출하라'. 서울메트로에서 구입한 중고 전동차를 개조해 실제 지하철 승강장처럼 꾸민 곳에서 진행됐다. 시작 버튼을 누르니 전동차가 앞뒤로 10여초간 왔다갔다 하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연기가 뿜어져 들어왔다. 체험 참가자들은 좌석 오른쪽 하단의 비상박스 수동레버를 열어 젖힌 뒤 2분 이내에 탈출해야 한다. 사고 당시 1분 50초 이상 연기를 들이마신 피해자들이 기억을 잃었다. 경북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단다.
문이 열리고 탈출을 하려는데 불이 꺼졌다. '미션 암흑을 극복해라'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불이 꺼진 23초간 피난의 걸림돌이 된 계단, 개찰구, 벽 등을 더듬으면서 대피해야 한다. 주변이 캄캄해지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이런 식으로 당황해 우왕좌왕하다가는 죽음을 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유도 타일을 따라갔다. 계단을 찾아 뛰어올라갔다. 어둠 끝에 보이는 희미한 햇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탈출을 하면서 방화 셔터에 문이 달려 있음을 확인했다. 추 주임이 "이것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탈출 과정은 비디오로 녹화가 돼 있었다. 모니터를 통해 탈출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철안전전시관 2층엔 지하철 화재를 가상 체험해 보는 시뮬레이션실이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조이스틱을 가지고 48초 이내에 탈출하는 것이다. 실제처럼 이리저리 헤매다 탈출에 성공하자 소방관이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아이들한테 특히 반응이 좋다"는 귀띔이다. 지하공간 안전실천·수칙 등의 자료를 읽어본 뒤 대피체험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간접적으로 치유하는 연출 공간 '그린(Green) 지하철'을 지나면 1차 체험은 끝이 난다. 방문객들은 이때 홀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RFID로 전송된 자신의 안전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
◆생활안전 전시관 등 기타 시설
안전테마파크 방문객들은 '생활안전 전시관'에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산악안전 ▷실내·외 지진 ▷응급처치 ▷소화기 ▷고층건물 탈출 체험 등이 포함돼 있다. 산악안전 체험은 등산 중에 만날 수 있는 산불이나 폭우, 산사태 등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간단한 암벽과 밧줄타기에 그물다리까지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교육이다. 지진 체험의 경우 한국에선 뜸한 편이지만 점점 발생 빈도가 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마련했다. 기자가 체험한 것은 리히터 규모 7. 이 정도가 되니 흔들림이 매우 심해 서 있기도 힘들었다.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였다.
응급처치 체험으로는 심폐소생술(CPR)을 배운다. 구조요원이 출동하는 5분 동안 심폐소생술만 해줘도 생명을 살릴 수 있다. '5분의 기적'을 만들 수 있는 필수 요소. 이곳은 아이들이 장난치다 사고를 낼까봐 유일하게 14세 이상 참가자에게만 체험을 허용하고 있다. 소화기 체험관에선 화재상황을 영상으로 연출하고 물 소화기를 이용하여 직접 진화할 수 있다. 고층건물 탈출 체험으로는 완강기나 피난사다리 등 피난기구 사용법을 익히고 이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지하 1층의 '미래안전 영상관'은 3D 입체안경을 쓰고 시뮬레이터에 탑승해 미래의 도시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의 활약상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3개월 시범운영 동안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곳이다. 예약 없이 찾아오는 일반 방문객도 이용할 수 있는 '방재미래관'에는 2·18 지하철사고 정보제공과 재난의 시대적 변천, 세계의 재난 그리고 방재미래를 보여주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야외에 설치된 '유아 피난체험시설', '야외 놀이시설' 등은 안전교육뿐만이 아니라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할 예정이다. '안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실제 체험을 통해 교육하는 것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대구시 동구 용수동 팔공산 동화사집단시설지구 내 1만4천여㎡ 부지에 들어섰다. 사업비 250억 원(국비 100억·시비 100억·성금 50억)이 투입됐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연면적 5천840㎡ 규모로 만들어졌다. 안전테마파크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체험 희망자는 2일 전까지 인터넷(safe119.daegu.go.kr) 또는 전화(053-980-7777)로 신청하면 된다. 1회당 20명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은 방재미래관과 야외시설만 이용할 수 있다. 전체 이용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은 휴관. 입장료는 무료.
▨ 개관전 잡음과 진통=부지선정과 착공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 공사는 지난 12월 29일 개관하기 이전에도 잡음이 심했다. 시민안전테마파크 내에 들어설 계획인 조형물과 공원의 추모 성격 여부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조형물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다는 점이다.
동화사집단시설지구 인근 주민들은 "대구시가 지난 2006년 안전테마파크 착공시 '추모 성격은 없다'며 서면약속까지 했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안전상징 조형물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위령탑으로 보고 있다. 추모사업추진위원회에서 추가로 2천314㎡(700평)의 땅을 매입해 조성하겠다는 잔디공원 또한 추모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안전테마파크가 추모의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이미 양보했는데, 조형물 기단부에 참사 희생자의 이름 정도는 새길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입장이다. 유가족들은 잔디공원도 "1년에 한차례 기념행사를 하기 위한 공간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현재로선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나 팽팽해 의견 수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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