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세계 각국이 영향을 받는 가운데 2008년의 우리 경제도 주가 폭락, 환율 급등 등 변동성이 매우 심한 시기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많은 중소기업에 환차손의 피해를 입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키코 사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키코가 본래는 기업이 환율 변동성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손실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환헤지 상품'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의 구조를 살펴보자. 이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 있을 경우 시장 환율보다 높게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은행에 팔 수 있는 통화옵션상품이다. 그러나 만약 환율이 범위 하단(knock-out) 아래로 하락하면 계약은 무효화된다. 반면 상단(knock-in)을 한 번이라도 넘어서면 계약금액의 두세 배 이상의 달러화를 사서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약정환율 950원, 환율구간 900~1천원으로 옵션계약을 체결했다고 하자. 이때 환율이 하한선인 900원 밑으로 떨어지면 계약은 무효가 되고, 상한선인 1천원을 넘으면 환율 상승분만큼 손실이 나고 보통 손실액의 2~3배를 물어주는 계약 조건이 붙어 있어 기업의 손실이 급증하게 된다. 지난 2, 3년간 환율이 900원대에 머물면서 하강하는 모습을 보였고, KIKO를 활용한다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환차익을 목적으로 상품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에 접어들면서 예상 외로 환율이 급등하자 문제가 터졌다. 환율이 예상과 달리 1천300원대로 급등함으로써 기업은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실제로 태산 LCD 등 견실한 중소기업까지도 키코로 인한 피해를 입고 흑자도산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피해를 모두 합치면 그 액수가 3조 원이 넘는다.
최근에는 키코에 대해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태의 향방을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키코로 인한 거래손실이 계약 당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므로 계약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신의원칙'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손실액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은행이 손실을 제한할 수 있는 다른 거래 조건을 권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적합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연쇄적인 소송을 벌일 것이 예상된다.
그러면 이번 키코 사태는 누구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일까? 답을 하자면 기업, 은행, 그리고 정부 모두가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 변동성에 대한 대비 차원이 아니라, 이익을 목적으로 오버헤징을 한 것이 결국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기업들의 가입과정에서 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스스로 문제발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은행은 중소기업들에 키코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그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부족했으며, 수수료 수입에 열중하여 고객 피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만약 수출업체들이 능력 범위 이상으로 계약을 맺는 투기행위를 정책당국이 미리 방지했다면 사태의 발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향후에 이러한 현상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 우선 각 기업은 리스크 전문가를 확충하여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계약시, 충분한 사전검토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기업들이 생소한 파생상품에 대해 사전 이해 없이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날로 심해져가는 현 상황 속에서 파생상품을 활용한 헤지 전략은 꼭 필요하다고 볼 때, 위험해 보이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무조건 피해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투기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생상품을 적절히 이용하여 영업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당국 및 금융기관에서는 파생상품 취급 시에 각 상품의 위험등급을 부여하고, 그 등급에 따라 판매 직원의 일정 직책 이상 혹은 자격증 소지 여부 등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시행해볼 만하다. 특히 감독당국은 은행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잘 판별하고 사전예방에 힘씀으로써, 제2의 키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하현(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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