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파리에서 만난 사람] 파리 한국문화원 그라피스트·사진작가 이정근 씨

프랑스의 새 천년맞이는 참 유별났다. 세계문화예술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답게 전통적이면서 독창적이었다. 새 천년맞이 기념위원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예술 평론가 이브 미쇼는 2000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연을 열었다.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 식으로 이루어진 토론의 장이었다. '지식이 지배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지식을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해방시키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모토로 강연은 공휴일도 크리스마스도 없이 진행되었다. 이후 366번의 새 천년맞이 기념 강연은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우리나라에는 '네오 아카데메이아'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어 있다.) 이른바 지난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여는 명실상부한 프랑스 백과전서(百科全書)의 탄생이었다.

파리에 있는 내내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나는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단 한 번조차 께 브랑리(비서구권 예술, 인류사박물관)를 찾았을 때 프랑스인에게서 받은 혹시 스페인 여성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유럽에서 동양인이라면 으레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으로 여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숙소 주변 카페를 지나칠 때마다 벽안(碧眼)의 웨이터는 빡빡한 일정에 지친 내게 이렇게 인사했다. "곤니찌와!" 막연히 고개만 까딱이다가 한 번은 그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한국인임을 밝혔다. 그 이후 흰 앞치마를 두른 그 웨이터는 나를 볼 때마다 "안뇽하세요!"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파리 한국문화원의 그라피스트·사진작가로 근무하는 이정근 씨(39세)를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다. 괴도 뤼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파리경시청 근처의 카페에서였다. 감빛 개량한복을 입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던 그가 심각한 목소리로 그나마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5년 삼성 휴대폰과 LG 냉장고 유럽광고를 제작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

"2004년 오르세 미술관의 작업을 했어요. 르느와르의 그림에 현대인을 자연스럽게 삽입했더니 담당자들이 열광하더군요. 사실성에 개입된 환타지, 최대한 개인감정을 표현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 먹혀든 거죠. 그 성공은 그들이 원하는 전체적인 컨셉과 나의 작업의도와 일치했고, 끊임없는 서로 간의 토의로 그들이 내가 가진 감성을 최대한 끌어내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작품 리스트만 그쪽이 제시하고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을 내게 완전히 일임해 준 것 또한 효과적이었어요. 2개월 정도 작업해 오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문가들이 모여 끊임없이 토의해 합일점을 찾아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완벽한 작업을 위한 담론의 장을 펼친 것이지요. 그것이 유럽, 즉 프랑스의 힘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파리 한국문화원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지난 2006년부터 한국문화원의 외부 그라피스트와 사진가로서 문화원의 전시 홍보물이나 한국문화행사 등의 지면 광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5회째 한국문화원에서 30여 년 동안 제작되어온 한국 문화잡지인 'Culture Coréenne'의 편집 및 제작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1996년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국립고등미술장식학교 사진학과 및 뚤레즈 조형예술학과 석사 과정 졸업한 뒤 13년째 그는 파리에서 살고 있다. 현재 재불(在佛)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 도록 등을 제작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프랑스의 한국 이미지에 대해 누구보다 적확하게 꿰뚫어 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 장점을 살려 현재 파리에 전문문화광고업체를 설립하고 양국의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 디자이너 샬리 슈의 의상 아트 디렉터를 맡아 작업을 하고 나자, 프랑스 대형 제과점 체인의 카달로그 제작 의뢰가 들어오더군요. 그 후 오르세 미술관 VIP용 8개국 카달로그 사진 촬영을 하고, 프랑스국립과학관 사진 촬영도 잇달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2004년 오르세 작업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직업적으로는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일이어서 기억에 남지만, 1999년 레바논에서 작업한 '거울을 통한 여행'이 개인 작업으로선 가장 애착이 갑니다. 레바논이라는 장소가 주는 긴장감 그리고 전쟁이 개입된 인간이 겪는 상황, 관계, 서양과 동양의 문화 충돌, 무엇보다 세계와 종교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을 끊고 시계를 보며 그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급한 일로 다음 작업의 관계자와 약속을 같은 장소에서 잡았다는 것이다. 막 들어서는 프랑스인과 같이 옆 테이블에서 파일을 주고 받더니 금새 돌아왔다. 그것을 미안해하며 지난 2004년 제작된 오르세 미술관의 작업 파일을 잠시 펼쳐 보였다. 아까 말한 것처럼 르느와르의 카페 사람들 그림 속에 현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앉아 있거나 손을 흔드는 모습이 든 사진이었다. "이것이 오르세 미술관의 VIP용 책자 사진입니다. 2004년 중국 전시회 전용 사진으로 제작된 것이지요."

광고 사진을 찍으며 느낀 소회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보다 유럽을 먼저 석권하는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문화마케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유럽, 특히 파리에서 먹혀들었다는 명품 이미지는 미국과 아시아 또는 제3세계 시장에 아주 유력하게 작용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그 이미지를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유럽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와 유럽의 생활 습관이 180도 다른 측면이 있다는 걸 간과해 전혀 쓸모가 없는 제품들이 팔리지 못하고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막연히 걱정이 돼 진땀이 날 정도입니다. 이런 것이 모국을 떠나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겠지요."

파리에서 한국인으로서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청년들에게 선배로서의 조언을 부탁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적용되는 평범한 진리 같지만 항상 열려 있는 사고와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견을 가지지 말고 무엇이든 항상 받아들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피지기(知彼知己)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우리 문화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문화를 충분히 숙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만이 그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가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언뜻 훑어보기만 해도 그의 일련의 작업과 사진들에는 그 노력과 탐구를 통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오롯이 녹아 있는 듯 했다. 마치 새 천년을 맞아 이브 미쇼가 기획한 담론을 한국식으로 해석해 온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은 문화의 힘을 보는 듯 했다.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이정근

◆약력

중앙대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파리 국립고등미술장식학교 사진학과 및 뚤레즈 조형예술학과 석사 과정 졸업

◆개인전 및 경력

1997년 뚤레즈 시립극장 사진 개인전(뚤레즈)

2000년 라이카사 주최 '레바논'전(파리)

2002년 Expotion 'Le Point, Point, Point' 전(서울 세종문화회관)

2004년 오르세 미술관 VIP용 8개국 카탈로그 사진 촬영 / 로레알, 삼성, LG 외 다수 사진 촬영 및 유럽 광고 등 제작

2006년 파리 한국문화원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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