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운동가 출신 김영일 경북도 정무부지사

도정현황 모르면 바보되죠…새벽에 일어나 '예습' 꼭 합니다

김영일(55) 경북도 정무부지사의 약력은 꽤 특이하다. 행정이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치과의사 출신에다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게다가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구미시장을 역임할 시절, 구미 경실련 집행위원장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표현대로 '껄끄러운' 사이였던 셈.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에게는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정무부지사로 취임한 지 1년이 흘렀다. 정책을 평가하고 비판하던 입장에서 정책을 세워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1년간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경북도청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탁자 위에는 미리 건넨 질문에 빼곡히 직접 답변을 정리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 물론 질문지대로 인터뷰를 할 만큼 기자는 순진하지 않다. 다행히 그는 꼬치꼬치 캐묻거나 말꼬리를 잡는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안팎이 다르더라

-정무부지사로 취임한지 만 1년이 됐는데, 어떻습니까?

"밖에서는 정책이 현장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도는 불필요한 간섭이나 하고 중앙과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없어져야 될 귀찮은 존재'로 여겼죠. 그런데 실제 들어와보니까 '도'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군 간에 업무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굉장히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행정 정책과 일선 현장의 시각 차이가 너무 큽니다. 경북의 사회복지예산이 연간 1조4천억원 규모이고 경북도 전체 예산 중 30%를 차지하는데도 복지사각지대가 남아있습니다. 현장과 이론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현장을 뛰었습니다. 때론 부지사라는 직책을 던져버리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갔어요."

-행정,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취임을 했는데 공직사회 특유의 경직성과 폐쇄성에 맞닥뜨린 적은 없습니까?

"오히려 제가 굉장히 어색하고 서먹해했죠. 당신이 뭘 알겠냐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공부를 참 많이 했습니다. 정무부지사는 대외 행사에 많이 가는데 관련 분야의 도정 현황을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행사 전날은 집에서 오전 2, 3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습니다. (그가 집무실 탁자 위에 쌓여 있던 20여권의 파일을 들추며 말했다.) 이게 다 각 정책들과 프로젝트의 중점사항을 정리한 파일입니다. 전부 요약하며 공부한 자료들인데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겁니다."

-예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로부터 청탁이나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진짜 부탁이나 청탁이 많습니다. 한결같이 취직시켜 달라는 겁니다. 제 서랍 안에도 이력서가 한 다발 들어있거든요.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거죠. 그러나 단 한 건도 연결시켜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력서를 내밀면 받아야죠. 안 받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이권이나 청탁,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극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참나'를 찾으려다가 얼떨결에 뛰어든 사회복지

-정무부지사로 지낸 동안 부부싸움을 한 적은 없습니까?

"예전 같으면 이틀 정도만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를 했는데 요즘은 자정에 들어와도 고맙다고 해요. 소주 두 잔이 주량인데, 일을 하면서 폭탄주 13, 14잔으로 늘었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몇 번이나 인사불성이 됐어요. 처음 인사불성이 되어서 집에 실려 갔던 날, 밤새도록 화장실 바닥을 기어다니니까 아내와 딸아이가 너무 놀라고 걱정이 돼서 한숨도 못 잤나봐요. 이틀 뒤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 가족이 걱정되지 않느냐'며 불평을 하더라고요."

-치과의사를 하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습니까?

"고향에서 치과의사를 하면서 대한민국 치과의사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로 신화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루에 260명을 진료했어요. 아마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돈을 벌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지역의 병원 문턱이 너무 높다는 생각에 문턱을 확 낮췄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온 거죠. 정말 휴일도 없이 죽자사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도 꽤 벌었습니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벌었죠. "

-문전성시를 이루던 병원문을 왜 닫았습니까?

"좁은 공간에서 일만 하다 보니까 몸도 마음도 굉장히 상했어요. '진짜 멋있게 살아봐야겠다' '나라는 존재를 찾아야겠다'며 미련없이 병원을 팔아버렸어요. 아내와 가장 크게 싸웠던 게 그때였습니다. 아내와 상의도 없이 그냥 팔아버렸거든요. 혼자 갇혀 있던 인생에서 벗어나서 사회를 보려고 했던 겁니다. 병원만 뛰쳐나가면 길이 있을 것 같았죠."

-'참나'를 찾겠다던 분이 구미시 사회복지협의회를 창립한 이유는 뭔가요?

"밖에 나와 있으니 사람들이 놔두질 않더라고요. 구미시 사회복지협의회를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사회복지기관 관계자들이 찾아오셨어요. 처음에는 거절을 했는데 1주일 뒤에 다시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하라는 것도 아니고 몇 년조차 못한다는 게 인간적으로 도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오셔서 회의도 하고 업무도 볼 수 있도록 사무실을 만들고 유지하는 역할을 했죠. 사비로 했는데 연간 6천만~7천만원 정도 들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복지협의회장을 하면서 사회복지에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싶어서 구미1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갔죠. 그걸 인연으로 주민통합서비스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도 하고, 인연을 맺게 된 거예요. 살면서 지금까지 가장 잘했고, 인간 구실을 했다 싶은 일입니다."

◆현장과 정책의 간격을 좁혀라

-부지사님이 찾아가는 현장의 상당수가 기관·단체 행사인데, 도민들의 목소리를 듣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가능하면 행사 후에도 참가자들과 식사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웬만하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하고요. 최근에 김천에서 발달장애아동들을 위한 행사에 참석했는데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일반적으로 기관장은 인사만 하고 가는 줄 아는데 저는 아이들의 발표 현장을 보며 끝까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학부모가 굉장히 고마워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전하는 많은 비판들은 꼭 메모를 합니다. 도청에 돌아와 각 분야별로 전달을 해주죠. 그러면 도청 직원들이 그 문제를 전문성있게 행정적 입장에서 어떻게 정책에 반영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메모한 분량이 얼마나 됩니까?

"(그가 서랍 속에서 손바닥 크기의 수첩을 꺼냈다.) 저는 수첩을 1년짜리가 아니라 월별로 사용합니다. 한쪽에는 날짜별 일정과 계획을 적고, 다른 쪽에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예전에 NGO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습관이에요. 주민통합서비스 전국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전국을 다니다보니까 틈틈이 나온 내용들을 현장감 있게 적은 거죠."

-사실 현장의 소리가 실제 정책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얘기하든 다 적어와서 전하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면 정책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메모한 것 중 실제 정책으로 된 것도 많습니다. 장애아시설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주거나 장애인들의 운동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는 일, 유아원 교사 수당을 2만원 인상시켜주는 것 등도 현장의 소리가 반영된 겁니다."

◆수직적 조직에서 수평적 관계로

-취임 초기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5급 사무관 17명을 대상으로 '화요회'를 열고 있는데요. 무엇을 위한 겁니까?

"도지사님의 지시사항이 국장, 과장, 계장 등 수직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원래 내용에서 10%씩 줄어들어요. 그러면 정작 계획을 입안하고 기안을 해야 할 담당자에게는 40%밖에 전달이 안 돼요. 나머지 60%는 담당자가 소설을 써서 보고서를 만드는 겁니다. 단계를 줄이고 수직구조를 수평구조로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도정의 핵심 책임자인 사무관을 중심으로 문제의식을 정확하게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한겁니다. 아울러 저에게 결재를 올리기 전에 17명 계장들이 모여서 자유토론을 하게 했습니다. 자기 업무에 대해 계획서를 내면 다른 16명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놓쳤던 부분도 검토할 수 있고 서로 도우며 동료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남은 재임기간 동안 가장 해보고 싶은 정책은 어떤 겁니까?

"명절에 대도시에서 손자들이 오면 할머니를 보고 기겁을 해요. 냄새난다고. 그러면 혈연관계의 정이 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지나 시·군 모범 경로당에라도 규격화된 샤워시설을 설치해 줄까 싶어요. 목욕을 하고 나면 정신적·육체적인 건강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노인들을 위한 생계형 일자리도 만들 생각입니다."

◆정무부지사 역할에만 충실할 것

-정무부지사의 기능 중에 도의회, 시민단체, 언론 등과의 협력 등은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평가가 그렇다니 힘이 조금 빠지네요. 정무부지사 역할도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산확보를 위해 중앙부서나 국회를 상대로 당정업무를 보고 있고 경북 생산품의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 출장도 자주 나가야 합니다. 대외관계 행사 참여도 상당히 많고요. 기본적으로 정무부지사는 정무직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도지사님을 보좌하는 것이고, 행정부지사와 역할분담을 해서 빈틈없는 도정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는가보다는 도정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무부지사로 경력을 쌓아 정치인 등 다른 길로 갈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까진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차기 선거에서 공천 제의가 온다면?) 그건 그때 고민해보겠습니다. 지금은 부지사 역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지금 보건복지여성 업무만 맡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어렵고 벅찹니다."

-10년 뒤 부지사님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아내와 손을 잡고 등산하거나 손자손녀를 안고 있겠죠.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요즘 들어 아내가 집안과 아이들을 위해 참 고생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는 밖에서 일하고 분주히 사느라 몰랐었는데 이제 진짜 철이 들었나봐요. 잠든 아내 얼굴의 주름살을 보면서 다 저 때문에 생긴 것 같아서 가슴이 찡하고 눈물도 나고 그렇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김영일은 누구?=1954년 경북 구미 출생. 선산초·중·고교와 경희대 치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7세때 친구 여동생의 친구였던 아내와 연애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선산에서 22년간 치과의사를 하다가 5년 전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며 병원을 정리했다. 이후 구미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았고, 구미1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2년간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했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주민통합서비스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한·중 교류협회 부회장, (사)한국정수문화예술원 이사장, 구미 경실련 집행위원장 등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펼쳤으며 지난해 경북도 정무부지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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