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가차없다. 칼바람은 바다를 눈밭처럼 하얗게 뒤집었다. 대중없이 달려드는 파도에 독도가 흔들린다. 순종하지 않는 그 무엇이든 삼켜버릴 기세다. 파고 5m. 풍속 15m/s.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거친 파도 속에도 바다의 품에 안겨 바다가 부리는 성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나운 들숨과 날숨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피할 곳이 없다. 피할 수도 없다. 그녀는 어차피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의 호흡에 온몸을 맡겨야 하는 운명이다.
그녀는 아직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하얗고 매끈한 몸매로, 날렵하게 동(東)에서 남(南)으로 남에서 동으로 맴돌며 순간순간 전화로 교신하고 교감을 나누지만 서로 그리움만 쌓아두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발치에서 그(독도)를 지켜보고 감싸며 연모하는 것. 그것 역시 그녀(해경 경비함)의 운명이다.
독도를 지키는 해양경찰청 경비함. 그들은 실제 적과 마주하고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태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독도를 범하려는 무리들을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영해선 밖에서 묵묵히 영토 수호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것. 그러나 그들이 독도 최전선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독도 사람'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동해해양경찰서 소속 2천700t급 1508함. 전장 98.1m 폭 14m, 최대속력 20노트, 유류 32만ℓ 탑재, 최대 운항거리 7만2천400㎞(4만5천마일). 물대포와 다수의 공용화기와 개인화기를 갖추고, 헬기 급유와 이착륙이 가능하며 1만t급 선박까지 예인이 가능하다.
해양경찰청 경비함이 해군과 함께 동해경비 임무를 맡은 것은 10여년 전. 1508함이 취역(就役)한 것은 2005년 10월 25일. 이후 365일 3천t, 5천t급 경비함과 함께 3교대로 7박 8일씩 독도 근해를 돌며 경계근무를 선다. 1508함에는 윤혁순(54·경정) 함장을 비롯해 해양경찰관과 전투경찰 OO명이 탑승, 일일 3교대 8시간씩 24시간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의 최대 적은 일본 순시선. 일본 순시선은 언제나 똑같은 항로로 거의 주기적으로 독도 근해에 나타나 우리 경비정의 신경을 건드리고 돌아간다.
"아마 독도에서는 일본 순시선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해 3월 이후 일본 순시선을 24회 조우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독도 동남 150~160도, 28㎞(15마일) 부근에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독도를 중심으로 정확히 동심원을 그리며 한 바퀴 빙 돌고는 다시 그 지점으로 와서 일본 쪽으로 사라집니다."
윤혁순 함장은 이럴 때면 전 승무원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1508함은 3~5㎞(2~3마일) 떨어진 내측에서 같이 동심원을 그리며 방어에 나선다고 전했다. 일본 배는 대부분 200~1천500t급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평소 만반의 방어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지난 1월 21일 15시경에 나타났습니다. 또 2월 초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 직접적인 공격보다 명분 쌓기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돌발 행동에 대비해 고속정 투입과 화기배치를 완료하고 경계에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일본 순시선이 독도 근해를 주기적으로 선회하고 있고 그에 맞서 우리 경비함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막아서고 있음을 모른다. 그 상황은 육안으로 관측되지 않은 동해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도에서 육안으로 그들이 보였다면 우리의 영토가 유린당했다는 굴욕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은 순전히 해경 경비함의 공훈이다.
"저희 승무원들은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이 1년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육지로부터 거의 200여㎞(130여마일) 떨어진 이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친 파도에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선상생활을 버티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도가 우리 땅이므로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 하나 때문 아니겠습니까?"
1508함 조타실에서 헬멧을 쓴 채 저 멀리 수평선을 경계하고 있는 전제선(47) 경사의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 그의 투철한 국가관에서 이 겨울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쳐도 우리 독도는 언제까지나 의연할 것이란 믿음이 든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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