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섬유와의 전쟁

원자바오(溫家寶) 중국총리는 2009년 2월 4일에 개최된 국무원상무회의에서 '섬유산업 및 장비제조업 진흥계획'을 통과시키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국제시장을 총괄 관리한다. 둘째, 기술개발과 자체브랜드 개발에 주력한다. 셋째, 낙후된 생산력을 보강하고, 주축산업이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우대정책을 실시한다. 넷째, 산업별 지역분포를 조정한다. 동부 연해지역은 첨단기술제품과 고부가가치 제품 등 자원소모가 적은 품목을, 신장(新疆)을 비롯한 중서부 내륙지역은 질 좋은 면사를 주재료로 하는 면직제품을 배치한다. 다섯째, 재정·세금·금융지원을 강화한다. 정책적으로 수출환급세율을 14%에서 15%로 높이고, 경영이나 재정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신용대출을 확대한다. 중소섬유업체들에게 신용담보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제를 마련하여 섬유기업들의 고질적인 부담을 감소시킨다. 원료가 되는 면화와 잠사의 구매에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기업이 협력한다. 이는 중국 섬유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진흥·지원정책이고, 정부가 공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나아가서 중국 정부가 전세계를 향해 발한 '섬유와의 전쟁' 선전포고이다.

중국이 섬유전쟁을 선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지난해 섬유산업 부문에서 마이너스 성장(-1.77%)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업계 전체 손실이 16.97%에서 20.44%로 늘어남으로써 전통적인 섬유수출국가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또 다른 이유는 쿼터제의 폐지에 따른 대응 때문이다. 2009년 1월 1일부터 세계섬유제품무역에서 쿼터제가 일괄적으로 폐지됨으로써 세계섬유시장은 소위 '자유무역' 시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 수출 부진으로 호재로 작용할 줄 알았던 쿼터제 폐지가 중국 섬유수출 기업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중국섬유산업계 관련 인사의 설명이다. "금융위기가 유럽연합의 섬유제품시장 수요를 대폭 축소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유무역시대로 진입하더라도 수출을 자극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중국의 입장에서 '자유무역'의 실현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유럽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오히려 무역보호조치가 발동되기 때문에 풍파에 직면한 중국 섬유업계의 입장에서는 더 큰 시련이다." 실제로 쿼터제가 취소된 후 구미 국가들은 무역구제조치를 발동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중국 섬유 및 의류제품 수입에 대해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중국은 이를 두고 미국이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중국을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중국 섬유업계가 당면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보호무역주의의 대두와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로 보는 데는 일리가 있다. 중국의 섬유수출 부진에 대해 '내부 원가 상승 때문이 아니라 외부 수요 감소 때문'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미국의 섬유수입총액은 5.1% 감소했고, 유럽연합은 1.2% 감소했다. 그리고 미국 등 전통적인 섬유수출시장뿐만 아니라 러시아, 남미 등 신흥시장의 수요도 대폭 감소했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중국 섬유수출 감소분 10~15%는 외부요인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중국은 문제의 해결책이 외부시장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고, '섬유전쟁'을 통해 돌파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의 한 관원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위기 하에서 보호무역주의 대두는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고,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까지 중국 섬유제품을 경계하게 만들 것이다. 이때문에 올해는 분명 섬유무역마찰이 최고조에 달하는 심각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에 덧붙이길, "2008년 이후 세계는 섬유제품무역에서 자유무역원칙을 준수해왔는데, 수입국들이 다시 인위적으로 무역장벽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섬유산업진흥계획, 실제로는 선전포고이고 무장해제에 대한 요청이다. 비견하자면 미국의 전 부시 정부가 추진했던 테러와의 전쟁과 같다. 명분이 테러에서 섬유로 바뀌었을 뿐이지 미국이 그랬듯이 중국 일방이 공격자이고 나머지 전세계가 방어자인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긴장, 그리고 양자의 합종연횡 시도를 보면 사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구 봉무동 논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시아폴리스, 야심 찬 밀라노 프로젝트는 뭐하고 있노!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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