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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의 달구벌 이야기] (6) 민족시인 이상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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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찾아 올바르게…작품보다 인품 더 고결

이상화는 현진건을 비롯한 벗들과 어울려 우미관 뒷골목과 다방골을 누비며 아픔을 술로 달랬다. 술집에서는 그를 대구 명문가의 귀공자로 대했다.

1928년 6월 대구에서 한글의 첫 글자를 딴 이른바 'ㄱ당 사건'이 터졌다. 신간회의 출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차용 장택원 등이 중심이 돼 달성의 부호인 김교식을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이었다. 그는 당시 신간회 대구지회 간사 자리에 있었던 터라 동지들과 함께 구금 송치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비록 몸을 던져 투쟁하는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흙을 사랑했고, 말과 글을 사랑했으며, 고향인 대구를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젊은이들을 깨우치는 데 힘썼다. 교남학교 교사 재직 때는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운동 경기 종목에 권투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뿐이랴. 그가 작사한 교가로 해서 가택수색을 당했고, 그 바람에 자신의 원고는 물론 이장희의 유고마저 압수당하고 말았다.

태백산이 높솟고/ 낙동강 내달은 곳에/ 오는 세기 앞잡이들/ 손에 손을 잡았다/

높은 내 이상 굳은 너의 의지로/ 나가자 가자 아아 나가자/ 예서 얻은 빛으로/

삼천리 골골에 샛별이 되어라.

(교남학교, 지금의 대륜중고 교가)

그의 창작 자세는 매우 신중하였다. 다소 장편을 쓰는 경향이어서 한 편의 시를 창작하는 데 있어서도 수십일 또는 수개월이 걸렸다. 1918년에 쓴 처녀작 '나의 침실로'가 '백조'에 발표된 뒤 본격적으로 활동하다가 1930년 이후에는 중단, 10년 남짓 창작활동을 한 셈이다. 생애를 통 털어 남긴 작품은 시 60여편, 소설 2편, 산문 20여편, 번역소설 5편 정도다. 시'산문'비평을 합해 전체 작품 가운데 절반 이상을 1925,26년에 발표했다. 그의 문학관을 살펴보면 '문학인은 삶을 기록하기 위해 남다른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그 같은 책임감은 민족 언어를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또한 시인이란 사상의 비판자이자 생활의 선구자이기에 시대와 호흡을 함께 하면서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작품보다 인품이 고결한 시인이었다. '진리를 찾자. 올바르게 살자. 민족을 구하자. 세계를 만들자. 인류에게 이바지하자.' 이 다섯 가지는 생명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1998년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으며, 2008년 계산동 고택이 복원되었다. 또한 달성공원에 시비, 두류공원에 동상, 수성못 가에 시비, 그리고 달성 화원에 위치한 가족묘역에 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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