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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 정치권력과 학자들의 順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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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들 정권 홍보이론만 양산, 싱크탱크서 마우스탱크로 변신

스탈린 치하에서 벌어졌던 '리센코 사건'은 과학과 정치의 야합이 초래하는 파멸적 결과의 전형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권력을 잡은 뒤 스탈린은 신생 소련을 이끌어 갈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의 창조와 '농업 생산성의 향상'이란 두 문제에 골몰했다. 여기에 사이비 과학으로 부응한 사람이 유전학자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였다. 그는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진화론의 정설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공격하며 후천적 환경이 선천적 유전형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획득형질도 유전된다'는 라마르크 학설의 소련 버전이다.

리센코는 겨울밀을 물에 담가 저온처리한 다음 봄에 파종하는 방법으로 이를 증명해냈다. 저온처리한 겨울밀이 봄밀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뒀던 것이다. 스탈린은 열광했다. 형질이 변한 종자가 많은 수확을 낳고 후대의 종자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공산주의 인간형의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 입장과 부합했다. 형편없는 농업 생산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의 이론은 1948년 10월 당의 공식 이론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리센코식 농법은 수확량을 증가시키지 못했다. 일부 환경에서는 수확이 늘어났지만 오히려 작황이 나쁜 경우가 더 많았다. 리센코의 실험은 48㎏의 밀 종자로 0.5㏊의 땅에서 한 계절에 거둔 성공에 불과했다. 광범위하게 적용하기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리센코가 1964년 흐루시초프의 실각과 함께 학계에서 축출될 때까지 그의 이론을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는 혁명 전 '유럽의 빵 광주리'로 불리며 수확량의 40%를 수출했던 러시아 농업의 파괴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지역개발정책의 목표와 전략 재정립'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골자는 "중앙정부 주도의 지역개발정책은 자원낭비, 낮은 주인의식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만큼 지역개발정책은 장기적으로 지방정부 주도, 자체재원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廢棄(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여정부 당시 세 차례의 보고서를 통해 지역발전을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던 것과 180도 다른 논리이다. 당시 KDI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역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의 방향 전환이 이뤄졌고 그 성과는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봐주기에는 너무 낯간지러운 變身(변신)이다. 정권이 바뀌면 진리도 바뀐다는 것인가. KDI의 이 같은 변신은 결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보고서 생산공장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렇게 해서는 KDI가 쌓아온 명성과 신뢰성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구원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완화하는 '금산분리 완화' 법안에 가장 명확한 반대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현행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완화해 연기금과 산업자본의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종전의 논리를 뒤집었다. "정부가 연구원을 '싱크탱크'(두뇌집단)가 아니라 '마우스 탱크'(Mouth Tank)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一喝(일갈)한 이동걸 전 원장이 사퇴한 지 보름 만이다.

이들의 변신이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 연구원들의 順應(순응)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부의 압력이 변신을 합리화시켜 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정부 입맛에 맞게 논리를 변경했다 해도 그 역시 순응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순응이 학자적 양심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가 그러하다. 자연과학은 실험과 측정에 의해 빠른 시간 내에 진위를 가릴 수 있다. 사회과학은 다르다. 진위 파악이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실험 대상'이 된다. 마르크시즘이 오류로 판명되기까지 길게는 1세기, 짧게는 70여 년이 걸렸다. 그 사이 숙청과 권력투쟁, 전쟁 그리고 사회와 인간개조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잘못된 사회과학의 피해는 이처럼 깊고 크다. KDI는 이러한 사실을 얼마나 깊게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鄭 敬 勳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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