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탓에 미술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고가 작품이 거래되는 경매시장이나 초고가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들에게 국한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 호당 가격이 그리 높게 책정되지 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은 미래 가능성을 점치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실제 선호 작품 위주로 수집하는 컬렉터들에게는 현재 같은 불황이 오히려 호기일 수 있다.
갤러리 제이원은 지난 5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6주에 걸쳐 1~4부로 나눠 2인전 릴레이 형식의 전시회를 갖는다. 신인작가 프로젝트인 '버딩 플라워'(Budding Flower)전. '꽃보다 작가'라고 이름 붙일 만한 신선한 작가들의 세계가 기지개를 켜는 봄과 함께 대구 관람객을 찾는다. 여러 전시회를 통해 작품 수준을 검증받았고, 일부 작가는 전시회에서 '솔드 아웃', 즉 매진 기록을 갖기도 했다.
지난 5일부터 10일간 진행되는 1부 전시 작가는 박철주, 신광호. 박철주는 일상적 소재를 색의 대비를 통해 재구성했다. 빛이 스며드는 회랑을 그린 작품은 8단계 빛의 대비를 통해 강렬한 빛과 어둠을 드러냄으로써 전혀 낯선 일상을 만나는 느낌을 갖는다. 신광호 작품의 소재는 자신이다. 손, 발 등 신체 일부분을 표현하면서 결코 '예쁘게' 그리지 않는다. 불거진 힘줄과 핏줄, 근육 속에 언뜻 에너지가 넘치지만 회색빛 바탕 위에 스며나오는 붉은 기운은 마치 선홍빛 피가 자욱하게 배어나와 뚝뚝 흐를 듯한 느낌을 전한다.
15일부터 10일간 2부로 전시될 작가는 박준식, 정준욱. 박준식 작품에서는 소리가 난다. 엄밀히 말하면 공명이고 진동이다. 그 떨림 속에 포말이 되어 산란(散亂)하는 액체를 표현한 정교함은 가히 탄성을 자아낸다. 정준욱은 대중들의 인지도를 얻고 있는 스타를 수백개의 픽셀로 디지털화한 뒤 다시 면과 점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한다. 스타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되묻는 듯하다.
25일부터 4월 3일까지 3부 작가는 변지현, 서보람. 변지현은 신인 타이틀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전시회와 아트페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 '달꽃'을 그리는 그의 작품은 초보자라도 쉽게 각인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개성을 갖는다. 거대한 달을 배경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 판타지 소설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서보람은 극사실화를 추구하는 작가다. 한복 위에 붙은 '샤넬' 상표는 고가 브랜드만을 좇는 물질주의 세태를 빗대는 작품이다. 한국화 채색 기법을 활용해 유화 물감이 아닌 안료로 작품을 그려냈으며, 가는 붓을 이용한 섬세한 표현력으로 작품의 밀도감도 극대화시켜 한국화의 놀라운 극사실 표현을 볼 수 있다.
다음달 4일부터 전시되는 마지막 4부 작가는 박정빈, 이채일. 박정빈은 '물결을 아는 작가'다. 멀리서 보면 마치 수면 바로 아래 유영하는 비단잉어를 사진으로 찍은 듯 정교하다. 하지만 실제 붓터치가 세밀한 것은 아니다. 빛과 물결의 반사, 그로 인한 대상의 굴절을 정확하게 비교적 굵은 붓터치로 섬세하게 잡아내는 동시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채일은 사진보다 선명하고 호소력 짙은 이미지를 추구한다. 그림을 갖고 싶다는 욕구뿐 아니라 그림 속 대상마저 소유하고픈 욕구를 자극하는 힘을 지녔다. 053)252-0614.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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