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거짓말

알프레드 패트릭 무어(86)를 모른다면 영국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천문학 서적을 70권 넘게 펴낸 그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천문학자이자 생태학 박사다. BBC 우주과학프로그램 '더 스카이 앳 나이트'를 50년 넘게 진행하면서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10여 년 전 BBC 아침방송에 출연한 그는 "태양과 지구가 다른 궤도상에 놓여 일부 지역에서 평소보다 중력이 약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점프를 해보고 중력의 변화가 있는지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연구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영국 이곳저곳에서 콩콩 뛰는 법석이 벌어졌고 방송국엔 수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아뿔싸, 그날이 4월 1일임을 깨달은 건 방송이 끝날 무렵이었다.

이쯤 되면 만우절에 써먹음 직한 낭만적인 거짓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악의적인 거짓말이 판을 친다고 한다. 법원도 만우절 거짓말뿐 아니라 거짓 신고에 대해 사회적 비용 등의 이유로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보도다. 지하철을 폭파하겠다고 거짓 전화를 한 사람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실형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상습적으로 거짓 신고를 해대는 정신 나간 사람이 전국적으로 하나둘이 아니라니 심각한 상황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일면식도 없다"거나 "돈 받은 적 없다"며 오리발부터 내미는 정치인'공직자의 거짓말이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돈 준 사람이 "주지 않고 어떻게 주었다고 하겠나"고 털어놓은 마당에 순순히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대학에서 만우절을 맞아 현직 국회의원 292명을 대상으로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베스트 5'를 선정했는데 뽑힌 5명은 적어도 직무와 관련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거짓말하지 않는 정치인이 드물다는 소리다.

상큼하고 가벼운 거짓말은 모두에게 즐겁다. 해 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詩經(시경)에도 '辭之輯矣 民之洽矣, 辭之역矣 民之莫矣'(말이 부드러우면 백성의 뜻이 모이고 말이 기꺼우면 백성은 더 이상 말이 없다)라고 했다. 자기 허물 덮느라 바쁜 정치인들 때문에 세상이 혼탁한 것은 바로 이런 거짓말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참말'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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