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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가정도우미였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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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근무하던 사무실 건물 주인집에는 대식구 손발이 되는 풋사과처럼 상큼한 가정도우미가 있었다. 사무실 셔터를 올릴 때면 벌써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고 늘 일상생활에 바빠서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게 고작일 정도로 혼자 감당하기 벅찬 시간들을 보내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루는 출퇴근하는 내가 부러운 듯 귀가할 집이 있어 좋겠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가정도우미 친구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고 어린 나이에 소녀가장이 되어 동생이랑 둘이 단칸방에 살았다고 했다. 잠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 동생 밥 한번 맛있게 해준 적이 없다는 친구는 부모 없는 서러움에 동생이랑 힘들게 살아온 시간들을 되새기듯 눈가엔 이슬방울이 맺혔고 친척 집에 얹혀사는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6개월 뒤에 동생도 데려오려고 했는데 막상 몸을 담고 보니 주인보다 더 빨리 일어나기 힘들고 주인보다 늦게 잠들어야 하는 것이 힘들어 뛰쳐나가고 싶지만 동생이랑 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 참는다고 했다. 가슴 찡한 사연에 인연은 엮어져 거리낌없이 농담도 주고받던 어느 날 "나 시집갈까?" 망설임 없이 내뱉은 말 속에 결혼만 하면 평화가 올 것 같은 희망을 드러내보이며 물어왔다.

"시집을…." 이제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였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그래, 가!"라고 대답해줬다. "부잣집으로 가서 편하게 살아야 해." 친구는 결혼 이야기를 꺼낸 지 한 달도 채 안되어서 고향인 진주로 가버렸고 연락이 두절돼 마냥 기다려야 했던 사무실로 편지가 배달되었다. 하얀 편지봉투를 개봉하니 아름다운 친구 결혼 사진이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친구는 가정도우미 때의 힘든 표정은 보이지 않고 세상에서 젤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신혼 탓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연락이 뜸해졌고 그렇게 연락은 끊겼다.

영임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거니? 가끔 네가 생각날 때면 가르쳐줬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본다. "네, ○○불고기 집입니다." 너의 목소리가 아니라 힘 빠지지만 한편으로 전화받는 상대방 목소리가 바쁘게 들려서 아마 영임이 너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위로해 본다. 보고 싶다. 내 친구, 영임아!

이동연(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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