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꽃보다 친구

어느 동기회나 다양한 모임들을 만들어, 등산도 하고, 바둑도 두고, 운동도 하면서 우정도 다지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다가올 허허로움, 소외감도 방지한다고들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등학교 동기들끼리 모임이 많은 것은 비슷한 청소년기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변동기나 화젯거리가 많았던 시기를 함께한 친구들이라면 그 비밀스런 동지의식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대학까지 중복된 친구가 많은 대구 토박이인 나에게 고등학교 동기들은 거의 대부분의 인생 여정을 함께한 친구들인 셈이다. 졸업 3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는 순간마다 소녀 시대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사치를 누리게 해주고, 나이가 들수록 꼭 있어야 한다는 친구가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손 잡아주고 귀 기울여주는 카운슬러 역할까지 해주니 그 위안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한 세월로 인해 이해와 용서도 애써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되는 것이니 마음의 편안함도 덤이고 복이다. 그런데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함께하는 가톨릭 신우회를 다녀오며 생각이 참 많았다. 작년 이른 봄 얼굴도 마음씨도 예쁜 친구가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남은 동기들은 그녀를 기리면서 그녀가 소원했던 가톨릭 신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던, 아니 보지 못했던 서로의 또 다른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모여 같이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생활 나누기를 하고, 1년에 한번 정도 성경 통독도 하고, 피정도 한다. 평소에는 차도 마시면서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왔지만 잘 보지 못한 속살을 보고 온 듯했다. 자신의 성취와 사회적 인정이라는 화려한 겉옷을 벗은 친구들의 삶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힘들고 고단한 희생과 박수를 피하는 겸손으로 가득했다.

재능과 능력으로, 자선과 선행으로, 시간과 노력으로 봉사하고, 묵묵히 뒤치다꺼리하고, 떠들고 자랑하지 않고, 더 내어주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잘한 일 없이 받은 것에 송구해하고, 무엇보다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

학력의 평준화,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나이가 되어서가 아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아서도 아니다. 가진 것, 이룬 것으로 큰소리 내는 것보다, 나누고 내어놓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이 더 힘이 있고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이, 그녀들이 펼쳐내는 삶이 참 아름답다. 꽃보다 고운 친구들이다.

금동지(대구가톨릭대 외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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