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간병하던 여성이 아버지의 유산 수십억원을 빼돌리고, 아들까지 살인 교사범으로 몰았다.
2007년 10월 5일, L(45)씨는 부하직원 B(42)씨가 유치장에 수감됐다는 소식에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L씨에게 다짜고짜 수갑을 채웠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경찰은 "B씨와 공모해 '돈을 내놓지 않으면 중국인 청부 살해업자를 동원해 살해하겠다'고 N(53·여)씨를 협박해 4천여만원을 뜯어낸 혐의"라고 밝혔다. N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7년 동안 간병인으로 일했던 여성이다.
L씨 앞에 나타난 B씨조차 "둘이 공모한 게 맞다"며 L씨를 몰아세웠다. 집안의 장남으로, 건실한 사업가로 일하던 L씨가 졸지에 돈 때문에 아버지의 간병인을 공갈 협박한 파렴치범이 됐다.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몰린 L씨를 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B씨였다. 경찰 조사가 계속되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B씨가 자신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라고 태도를 바꾼 것. 오히려 N씨가 자신에게 5차례에 걸쳐 2천130만원을 건네며 'L씨가 협박한 것처럼 진술하면 사업을 도와주겠다' '당신 고소는 취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회유했다는 진술이 B씨의 입에서 나왔다. 결국 L씨는 무혐의로 밝혀졌다.
졸지에 아버지의 유산을 빼앗긴 데다 파렴치범으로 몰려 충격을 받았던 L씨는 지난 4월 N씨를 무고 및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극적으로 증거가 발견됐다. 검찰이 B씨의 옛 휴대전화를 입수해 삭제된 문자메시지를 복원한 결과 'B씨 고마워요, 약속한 돈을 줄 테니 수고해 주세요' 등 N씨가 B씨와 공모한 증거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검찰은 지난 2일 N씨를 구속했지만 N씨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N씨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L씨 아버지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20억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치매에 걸린 L씨의 아버지와 사실상 동거하며 부동산을 명의신탁 받고, 각종 임대수입과 아파트 판매금 등을 자신과 가족들의 통장으로 이체시키는 수법으로 재산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또 L씨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2003년 10월 중구 동성로의 2층 상가(시가 10억원 상당) 지분 절반을 유언으로 공증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간병인으로 한 달에 120만원을 받았다는 N씨가 L씨의 아버지 사망 후에 매달 1천만원 이상 쓰며 호화생활을 했다"며 "그러나 N씨가 치밀하게 준비해 재산을 빼돌린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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