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개월간의 영국 생활을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귀국 후 처음으로 찾은 곳은 대구였다. 대구 시내 한 백화점 앞에서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 재개를 선언하면서 동서 화합을 완성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했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호남을 뒤로 하고 취약지인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정치인 김대중'에겐 그만큼 대구경북이 '블루오션'의 대상이었고 자신의 정치적 최대 화두였던 동서화합을 이루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대구에서 밝힌 대통령 선거 지역 공약은 김 전 대통령의 영남권 애착을 재차 확인시켜 줬다. 지역 공약 발표회를 통해 공개한 공약들은 대부분 엄청난 예산이 소요돼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공약에는 ▷위천공단 조성 ▷세계적인 섬유패션도시육성 ▷첨단기술·정보가 집적된 고도산업 도시 건설 ▷동남아경제를 선도할 중추도시건설(이상 대구), ▷4대 권역별 중점개발 ▷경쟁력 있는 복지 농어촌 건설 ▷관광산업 육성 ▷광역고속교통망 확충(이상 경북) 등 지금도 대구경북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지역에 돌아온 최대 혜택은 밀라노프로젝트 사업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정부는 2000년 광주의 광산업, 부산의 신발산업과 함께 대구에는 섬유산업 기반 조성 사업을 지원했는데 7천억원 가까운 가장 큰 예산을 대구에 배정했다. 정부는 예산상 문제를 들어 밀라노프로젝트 사업을 대폭 축소하려고 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문희갑 대구시장을 필두로 하는 대구시 방문단과 함께 밀라노를 전격 방문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고 결국 자신의 공약을 지켜냈다.
같은 해 7월엔 청와대에서 이한동 국무총리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참석시킨 가운데 관광진흥회의를 열고 경북 문화관광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경북 4개시 7개군을 중부권(안동·예천·영양), 북부권(영주·봉화), 남부권(청송·의성), 서부권(문경·상주), 해안권(영덕·울진)의 5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지역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북북부 문화 발전 계획의 모태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의 대구경북 포용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1999년 5월 1박2일 일정으로 대구·경북을 방문해 지역 원로,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기념사업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 의사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당한 가택 연금에서 해제된 지 정확히 20년 만의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만찬에서 "물러난 대통령은 모두 부정적인 평가만 받아 왔지만 공적은 평가해야 한다"며 "지지 여부를 막론하고 박 전 대통령이 6·25 폐허 속에서 근대화를 이루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영남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박 전 대통령을 끌어안음으로써 영·호남 화해를 모색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호남 화합을 위한 행보와 지역에 대한 애착에 대구경북 시도민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평민당 후보를 선택한 지역민은 대구 3만여명, 경북 4만여명에 불과했지만 14대 대선에서 김대중 민주당 후보에게는 대구 9만여표, 경북 15만여표가 몰렸다. 특히 대통령에 당선된 15대 대선에선 국민회의 간판으로 나선 김 후보에게 쏠린 대구·경북 표심은 각각 17만여표, 21만여표로 급증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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