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이하석 외 32인 지음/도요 펴냄
큰소리치던 아버지,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던 아버지, 호통 한 번으로 어렵고 난감한 문제를 무 자르듯 마무리짓던 아버지, 영광과 불명예를 홀로 안으셨던 아버지, 쓸데없는 강단을 보이거나 허장성세를 부리던 아버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그런 아버지들이 없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는 흔한데 아버지는 없다.
그 많던 아버지들, 그 당당하던 아버지들은 다들 어디로 가신 것일까? 이 책은 33인의 시인, 소설가들이 쓴 아버지 이야기다. 작가들이 쓴 이야기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의 진술이다. 이들이 회고하는 아버지는 '못마땅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버지들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사람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해산이 임박하자 아버지에게 산파를 불러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내 나갔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웃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애기를 낳은 할머니가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했다. 형이 산파집을 찾아가니, 아버지는 산파 아저씨와 바둑을 두고 계셨다.' (이하석 시인)
'아버지의 마지막 나이는 38세. 오래전 나는 그 운명의 38세였고 자주 죽음의 앞뒤를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가 어린 세 아이를 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 세 아이를 두고 있다. 이 아이들을 두고, 게다가 내가 읽어야 할 책과 가 보아야 할 장소와 들어야 할 임방울의 노래와 서쪽의 노을을 버리고, 지상에서 소멸한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 죽음에의 생각이 다시 아버지를 진지하게 돌이켜 보게끔 했다. 1968년 그분이 지상에 버려두고 가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정다감했던 그분이 가장 먼저 눈 돌렸던 것은 세 아이가 아니었겠는가.' (송재학 시인)
'내가 첫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느닷없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배가 고파 우는 나를 품에 안고 동네 골목길로 나아가 동냥 젖을 먹이셨다고 한다. 당시 마흔 둘의 나이로 전란통에 홀아비가 되신 가친께서는 얼마나 기막힌 심정이셨을까.' (이동순 시인)
책 '아비'는 아버지가 된 남자들의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보다 못하지 않았을 아버지의 사랑을 자식들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없었던 자식은, 이제 아버지가 돼 아버지를 그리워할 뿐이다. 270쪽, 1만 2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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