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연극 '햄릿'을 첫 공연한 도시가 어딘지 아세요? 바로 대구예요. 한국전쟁 통에 피란 온 국립극단이 공연을 한 거지. 그 뿐입니까. 대구는 전쟁 통에 수많은 문학'예술인들이 활동하던 곳이에요. 문화적 토양이 어느 도시보다 깊지요."
5일 오후 수성아트피아 공연장에서 만난 연출가 이윤택(57'동국대 연극학과 교수)은 대구에 대한 진한 애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6일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하는 연극 '햄릿'의 연출자로 대구에 내려온 참이었다.
대구와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한 1986년이었다. 당시 초연작인 '죽음의 푸가'를 초청해 무대에 세워준 곳이 전 환경부장관 이재용이 대표로 있는 대구 극단 처용이었다. "그때 처용 사무실에서 알게 된 사람이 이제는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로 유명해진 이상원씨예요." 이윤택에게 '한국적 세익스피어'를 탄생시켰다는 찬사를 안긴 연극 '햄릿'이 96년 첫 공연한 곳도 경북대 대강당이었다.
이후 그는 연극 '오구', '어머니' 등의 작품으로 거의 매년 빠짐없이 대구를 찾아왔다.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때는 시상자로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대구의 공연 환경은 서울 다음으로 전국에서 으뜸이라며, 대구가 공연문화도시를 브랜드로 삼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애정 어린 지적도 잊지 않았다. "대구는 닫힌 도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도시가 되려면 '열린 지역주의'를 취해야 한다"며 "전국, 전 세계의 공연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를 위해 대구시가 현장의 작업자들에게 귀를 열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활약 중인 대구 연극인들은 많은데, 대구의 작품이나 극단 차원에서의 중앙 진출은 소극적인 것 같다"며 분발을 요청했다.
이윤택이 연출한 연극 '햄릿'은 오랜만에 만나는 정극. 가벼운 연극이 점령한 요즘 연극계에 그가 다시 '교과서'를 꺼낸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 공연계가 정극을 잘못 만든 거죠. 지루하게 만드니까 관객들이 이탈하는 거예요. 대극장 공연에 어울리는 품위와 배우들의 뛰어난 앙상블로 정극을 되살려야지요."
이윤택은 오태석(용띠 띠동갑으로 이윤택의 서울연극학교때 담임이다)과 함께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연이어 지낸 대한민국 연극계의 간판. '대선배'의 조언은 뭘까. "공연예술을 자본과 기획이 중심이 되는 엔터테인먼트, 대중을 위한 쇼로 보는 시각이 '메이저'가 됐다면, 연극인들은 마이너의 입장에서 저항해야지요. 연극인으로 사는 게 힘들다지만, 저희 때보다는 낫잖아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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