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9년 전 아버지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단둘이 남겨진 엄마와 딸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이자, 친구가 됐다. 모자원과 빈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도 서로가 있어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요즘 불안하기만 하다. 10년 전 시작된 암 발병이 벌써 3번째 재발했다. 이번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폐로 전이됐다고 한다. 이분희(51·울진군 평해읍)씨는 "계속 병이 재발하자 요즘 부쩍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내가 죽는 것은 겁나지 않지만 혼자 남을 딸아이가 걱정돼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솟구친다"고 했다.
이씨가 처음 암이 발병한 것은 딸 지혜(가명·고1)가 일곱 살 무렵이었다. 당시 남편은 배를 탔고, 이씨는 살림만 했다. 집안 청소를 하던 중 무심결에 목을 만졌는데 이상한 혹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씨는 "병원에 가서 한 번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암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부산에서 살고 있던 여동생의 성화에 병원을 찾았다가 내려진 진단은 갑상선암. 급히 수술을 해 갑상선을 모두 들어내야 했다.
수술 후 겨우 몸을 추스를 무렵,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심장마비였다. 워낙 건강하던 사람이어서 믿기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에 남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딸과 이씨뿐이었다.
이후 살림은 급격히 기울었다. 얼마 되지 않는 저축은 수술비로 다 써버린 상황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리자 생계는 고스란히 이씨의 몫이 됐다. 사회생활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식당에서 허드렛일도 해보고,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온갖 잡일을 전전했다. 방세라도 절약해야겠다 싶어 모자원으로 거쳐를 옮겨 4년간 생활했다. 규정상 모자원에서는 3년밖에 머무를 수 없게 돼 있지만 이씨 모녀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1년 더 머무를 수 있었다.
2005년 모자원을 나오자 이들 모녀는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찾은 곳이 고향마을. 동네 이장님과 어른들의 배려로 빈집을 찾아 살림을 꾸렸다. 이곳에 산지가 벌써 4년째다. 딸이 다니는 학교와는 꽤 거리가 있어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올 차편조차 마땅치 않지만 방세를 감당할 능력조차 없으니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벌써 두 번째 암이 재발하면서 수중에 남은 돈은커녕 치료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씨는 2007년 연말 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돼 재발하면서 한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고, 올 초 또다시 폐로 전이돼 암이 재발하면서 방사선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어쩜 암이 이렇게도 끈질긴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이씨는 "딸만이라도 편하게 생활하게 해 주려 기숙사에 들어가라고 권유해 봤지만 아픈 엄마를 혼자 둘 수 없다며 계속 반대를 해 먼길을 통학하고 있다"며 "그나마 학교 인근의 합기도 학원 원장이 밤늦게 집까지 지혜를 데려다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씨의 소원은 하루빨리 병을 떨쳐내고 지혜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병을 앓는 저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산 아이에요. 아빠가 있을 때는 하나뿐인 딸이라 정말 공주처럼 키웠었는데 이렇게 아픈 엄마가 딸에게 짐이 되고 있으니 미안할 뿐이죠. 아무리 힘든 치료라도 다 견뎌낼 수 있으니 지혜 곁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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