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이면서 사장인 김만진 시인이 첫 시집을 냈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시를 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기름 냄새, 쇠 냄새, 새끼손가락으로 휘저은 막걸리 냄새가 난다. 삶의 고단함과 시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것이다.
절대공고, 전파기계, 여관방, 지우개 똥…. 그는 생활을 노래한다. 방바닥에 흩어진 지우개 똥을 보며, 아홉 살 딸이 숙제를 하다가 잘못 쓴 것을 지웠음을 안다. 그 지우개 똥을 보며 오늘 하루 자신이 쓴 삶 중에 지우고 싶은 것을 떠올린다. 상스러운 욕, 패대기쳤던 기름 장갑, 길에 뱉었던 가래침을 지우고 싶다.
'밤늦게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작업복을 빠는 이유는/ 손톱 밑에 절은 시커먼 기름때 때문입니다/ 당신은 청승맞다고 말 하지만/ 손톱 밑에 기름때는 잘 빠지지가 않아요/ 수세미로 문질러도 그렇고/ 칫솔로 문질러도 그렇고/ 작업복을 빨래 비누로 척 척 문지르고/ 양손으로 벅 벅 주물러 빨면/ 그나마 조금 빠져요/ 작업복도 빨고/ 손톱 밑에 기름때도 빠지고/ 비누 아껴서 좋고/ 내일이면 또 내일의 기름때가 끼겠지만/ 오늘의 기름때는 오늘 빼야 되잖아요/ 작업복을 벅 벅 주물렀어요.' -빨래하는 이유-
만난 일이 없지만 김만진은 맑은 웃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가 어떤 모습으로 웃는지 짐작이 간다. 막걸리를 왜 새끼손가락으로 휘젓는지 알아? 너와 나 굳은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 걸잖아. 노동자이면서 사장인 시인은 어제 저녁에도 아마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굳은 약속을 했으리라. 91쪽, 7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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