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명 시민이 사는 대구에 빈민(貧民)이 없을쏘냐. 사는 형태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당연할 터. 그래도 정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세계 복지국가의 대표인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이 부자가 아무리 잘 살아도 국민 평균치의 몇 배 이상을 더 가지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대구도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도시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달동네, 판잣집을 연상하는 빈민촌이 여전히 도심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연탄 1장이 아까워 불 때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도와주기도 마땅찮은 경우가 대부분. 중구 성내3동과 대구역 맞은편 대우빌딩 일대, 서구 비산2·3동, 동구 신암1동, 북구 칠성동 일부 등은 여전히 딱 보기에도 아직 1960, 70년대 빈민촌 분위기다.
대구시도 시민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이 문제에 대한 답이다. 답도 없는 데다 요즘은 온정의 손길도 줄어 가난한 이웃의 겨울나기는 갈수록 힘들다. 팍팍한 삶을 이겨가는 이들이 집단적으로 사는 동네를 찾아갔다.
◆대구의 대표적 가난촌 '비산 2·3동' 일대
달성공원 뒤편 서구 비산 2·3동 300여가구가 사는 동네. 여느 마을처럼 현대식 건물이 마을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겉모습뿐이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사람 한두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의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고, 골목길 바닥은 보도블록으로 말끔히 단장됐다. 그것은 20년 만인 올해 희망근로사업으로 처음 깔았다고 한다. 공원이라고 있는 것이 주택에 있는 정원만 못하다.
마을 속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에선 보이지 않던 낡은 기와집과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을 한 허름한 집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서경숙(55) 통장은 "전체 300가구 중 60가구는 겨울나기가 힘들 만큼 가난하다"고 말했다. 기름보일러는 희망사항일 뿐 거의가 연탄 아궁이에 온 식구를 내맡기고 있었다. 서 통장은 연탄을 직접 구입해 쓰는 가구도 드물다고 했다. 연탄을 살 능력이 안 돼 이웃의 따뜻한 손길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다는 것.
일용직이라는 임시 직장을 가진 이들은 그나마 행복하다. 대다수는 직장이 없다. 주운 폐지를 내다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더욱이 겨울이라 벌이가 변변치 못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통장은 요즘은 따뜻한 이웃들도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다고 했다. 연탄이 없어 전기장판의 온기로 겨울을 버티는 가정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연탄 한 장이라도 지원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희망이랄까.
마을 입구 도로에는 '내가 필요없는 자전거 이웃이 필요하다. 불우한 이웃에 기증합시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연탄과 자전거, 이들에겐 절실한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중구 성내3동 '쪽방 노인들'
북구 성내3동 북성로 공구골목 한켠. 5명의 노인들이 3.3㎡(1평) 남짓한 쪽방에서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30년이 지난 낡은 여인숙이 이젠 쪽방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노인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35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중 15만원을 월세로 내고 2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대개는 자식들이 있지만 사실상 인연이 끊긴 상태다.
쪽방은 연탄아궁이가 없다. 노인들은 전기장판으로 한기(寒氣)를 달래고 있었다. 기름보일러는 설치돼 있지만 기름을 살 엄두는 아예 낼 수 없다. 게다가 올해는 주변의 지원도 없다. 끼니는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도시락과 급식, 동사무소에서 지원하는 쌀로 때울 수 있지만 추위는 이들 노인들에게 가장 위협적이다.
1평 남짓한 쪽방에 앉아 있는 이성두(76) 할아버지는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너무나 갑갑할 만큼의 두터운 겨울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겐 당장 '기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내3동 최은영 사회복지사가 그나마 이들에게는 천사였다. 최 복지사가 나타나자 이들은 서로 손을 잡아주고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자신들의 딸보다도 한창 더 어린 최 사회복지사였지만 그들에겐 가족보다 더 필요한 존재였다.
중구에는 성내3동 쪽방촌 노인들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대구역 일대 대우증권 빌딩 주변에 위치한 판잣집 같은 빈민촌 일대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가 더 큰 숙제다.
◆동구 신암1동 '603번지'
'603번지'는 어렵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동구에선 가장 힘겨운 촌이다.
동네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5통, 6통에 사는 30~60가구가 특히 어렵다. 이들은 대부분 19~33㎡(6~10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연명하고 있으며, 마을 한켠에는 공동으로 빨래를 느는 공간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사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표현대로라면 40년 전 모습 그대로란다. 빈 공터에 공원조차 없다. 동네 주민들은 네거리 쪽 공터에 쉴 만한 공간 하나 만들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5통 강복자(56), 6통 김흔자(47) 여성통장은 "이 동네에서 수십년간 살았으며 현재 통장을 맡고 있지만 어려운 이들이 너무 많다"며 "마음은 한없이 따뜻한데 사는 현실이 너무 힘든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제로 두 통장은 마을 구석구석 어려운 가정을 찾아다녔으며, 도와줄 방법이 있는지 신암1동 김기일 사무장과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603번지 인근에 또 빈촌이 있다. 역시 신암1동이다. 대구기상대 인근 30여가구가 사는 이곳 역시 아직도 공동화장실을 쓰고 있다. 불편하기 그지없다. 큰 일(?)이 곧 나올 것 같은데 서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른 구도 가난한 자가 없을쏘냐
중·동·서구만 가난촌이 있겠는가. 남·북·수성·달서구 역시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들이 있었다. 다만 개발이 상대적으로 많이 되어 달동네 분위기의 빈민촌은 찾아보기 힘들며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달성군도 마찬가지지만 촌 지역이어서 도시빈민 개념과는 다소 달랐다.
남구는 대명 3·4동이 취약 동네. 허름한 동네인 대명3동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640가구, 대명4동에도 520가구가 살고 있다. 북구에는 산격1동 주공영구임대아파트에 1천553가구, 칠곡IC 인근 관음동에 전세 1천~2천만원 정도 하는 오래된 주택에 살고 있는 509가구가 터전을 잡고 있다. 수성구엔 범물1동 용지아파트에 기초생활수급자 1천483가구, 지산동 주공5단지에 556가구, 황금1동 주공3단지 602가구가 살고 있다. 달서구에는 월성2동 주공임대아파트에 2천261가구, 신당동 주공임대아파트에 1천979가구, 상인동 비둘기아파트에 1천768가구가 살고 있다.
4개 구처럼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사실상 도시 빈민들의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북구 주민생활지원과 생활보장업무 정국철 담당자는 "우리 구의 경우 북구 칠성시장 인근과 대구역 뒤편 일대가 빈민가처럼 어려운 현실이지만 대현동 등 다른 동네는 다 재개발이 되어 그렇게 보기 싫은 정도의 달동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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