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이 필요한 아동과 장애아동, 만성질환자, 노인을 돌보는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맞벌이 가족의 증가, 평균수명 연장 등으로 인해 더 이상 가족에게만 돌봄의 책임을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가족의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분담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국가 차원에서 아동양육을 지원하는 보육정책이 추진되고, 지난해부터는 중증 일부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노인수발보장제가 시행됐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민간에서도 돌봄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회적기업이 늘고 있다.
◆대구여성노동자회
얼마 전 '양육비 100만원을 줄 테니 아이를 하나 더 낳겠느냐?'는 앙케이트 조사가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많은 여성들의 선택은 '돈'보다 '현실'이었다. '현실'을 택한 대다수의 여성은 '직장맘'이었다. 그들은 '돈'보다는 '믿고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서비스'를 원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면서 자녀양육 부담은 세계 꼴찌 출산율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대구여성노동자회(대표 김영숙)는 이런 엄마들의 요구를 등에 업고 태어났다. 지난해 1년 동안 노동부로부터 돌봄 분야 '모델 발굴형' 사업에 선정돼 20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시험'을 거친 뒤 이달부터 '기업 연계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하는 사업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 보육서비스'다.
"최근 노동부의 영아보육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퇴직자의 68%가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때문에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또 일하는 엄마가 진정 원하는 것은 보육시설보다 가사대리인을 이용할 경우 보육비를 지원하는 정책이었지요." 정현정(34·여) 대구여성노동자회 실업빈곤팀장은 이 때문에 대구여성노동자회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여성의 경력 단절 및 심각한 저출산의 문제는 그동안 여성에게 부담지웠던 자녀양육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따라서 보육 서비스 분야의 믿을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 많이 생겨야 여성의 보육 부담을 줄이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보육사 14명은 모두 40~50대 중년 여성이다. 이들 역시 자녀양육 문제로 오래 전 다니던 직장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여성들이다. 정 팀장은 "보육사 분들이 하루 9시간씩 대상 가정에 찾아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사실 아이 보는 일이 힘든 일이지만 오랜만에 취직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현재 이곳에서 아이를 맡고 있는 가정은 모두 15가구. 한 가구당 월 80만원씩 받고 있다. 싼 가격은 아니다. 그래서 이중 3가구는 업체가 개발한 40% 수준인 월 32만원의 '저렴형' 상품 혜택을 받고 있다. 정 팀장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수익금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저렴형이나 무료형 양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구 수를 점차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영숙 대표는 "가정 보육사는 중장년 여성의 특성을 살린 여성 적합형 일자리"라며, "따라서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중장년 여성들의 신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젊은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사)가경복지센터
대구여성노동자회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다면 (사)가경복지센터(관장 이원창)는 '노인장기요양을 통한 건강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비전을 내건 사회적기업이다. 경주시 성동동에 위치한 가경복지센터는 2008년 7월 취약 계층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결성됐으며, 지난달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간판을 인증받았다.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 기업의 취지대로 현재 전체 근로자 30명 중 23명의 취약 계층을 상근직으로 고용해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했다. 또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사, 돌봄, 이동 등의 방문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의 일부를 저소득층 가정 지원 서비스, 가사 지원 서비스, 목욕 봉사, 이·미용 서비스, 이동 도움 서비스 등의 각종 무료 봉사활동으로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특히 가경복지센터는 내년부터 더욱 본격적인 사회적기업으로 변모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획팀 박서연(23·여) 사회복지사는 "취약 계층의 전문화와 돌봄 사업의 전문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내년엔 기존 장기요양사업뿐 아니라 취약 계층의 직업 교육을 통한 취업 알선과 찾아가는 봉사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선 '고령자 인재은행'과 '여성 새일 센터'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년 퇴임한 고령자와 경력 단절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운영해 재취업을 알선하겠다는 것. 또 결식아동과 형편이 어려운 홀몸노인들에게는 '행복 도시락' 사업을 통해 찾아가는 봉사를 할 예정이다. 특히 행복 도시락 사업을 위해 취약 계층의 근로자를 더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기로 하는 등 진정한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박 사회복지사는 "직원들에게 사회적기업의 의미를 항상 생각하고 일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인성 교육과 직무 교육을 하고 있다"며 "돌봄 사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경복지센터 이원창 관장은 "고용 없는 경제성장 시대에 취약 계층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른 시일 안에 완전한 자립 경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다른 사회적기업의 모범이 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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