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30여년 간 인연을 맺어온 도쿄의 모리타 이용점. 4대째 이 이발소를 이어오고 있는 모리타 야스히로(62)씨는 호암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로 아버지가 회장님의 이발을 담당했지만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제가 2번 정도 회장님의 이발을 해드렸습니다. 이발을 직접 하지 않았을 때도 곁에서 회장님의 목소리는 늘 들었습니다. 오실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참으로 상냥한 분이셨습니다."
그는 호암이 모리타와 인연을 맺은 1950년 이래로 평균 2개월에 한번씩은 꼭 모리타 이용점을 찾았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쇠약해져서 못 오셨지만 30여년을 저희 가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오시면 머리를 깎고, 얼굴 면도를 하셨죠.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해서 돈을 펑펑 쓰는 편도 아니었지만 인색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이발 요금보다 몇천엔씩 꼭 더 얹어 주셨습니다."
이발소에서 꽤 오래 머물다 자리를 떴지만 호암은 결코 일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항상 웃으며 재미있고 즐거운 얘기만 했다는 것.
"유창한 일본어로 항상 가족의 안부를 주로 전해왔습니다. '아내가 잘 있고 손자 손녀들이 요즘 너무 잘 논다' 등 가족 얘기를 많이 하셨죠. 엄청나게 많은 사업을 벌어셔서 가족을 볼 시간도 자주 없었을 텐데 가족들의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걸 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호암이 이 이발소의 장인정신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건네자 모리타 씨는 이발하는 일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1878년 문을 연 모리타 이용점은 저까지 4대를 이어왔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아버지가 이발하는 모습을 봐왔고 '내가 이 일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전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런 전통이 기술을 낳고 발전을 이룹니다. 이발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가업을 잇느냐는 얘기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회장님께서도 그런 점을 알아주셨다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는 호암을 떠올리면 미안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호암의 전용 면도기가 있었는데 이를 잘 챙겨두지 못해 아쉽다는 것.
"면도기를 직접 들고 오셔서 '마이 나이프니까 내 면도는 이걸로 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없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사실 회장님과 저희 가게의 인연은 이발소와 손님 관계 이상이었죠. 회장님은 이발을 안하더라도 우리집을 찾아오셨고 이따금 선물까지 주셨습니다. 회장님보다 4세 아래인 아버지(4년전 작고)는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참으로 슬퍼하셨죠. 그러나 회장님의 기업 삼성이 크게 성장했으니 저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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