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땅값 거의 공짜 수준…어느 기업이 대구경북 오겠나"

정부 투자융치 지원방안 발표에 반발 확산

정부가 5일 세종시 투자유치를 위해 마련한 제도적 지원 방안은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국가산업단지 등 현행 산업용지 등의 공급 제도 중 좋은 '엑기스' 인센티브만 골라 모은 '백화점식 특혜'라는 평가다. 특히 정부가 지방의 반발을 의식,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맞추겠다"고 한 약속을 깡그리 무시한 채 원점으로 돌아가 세종시에 온갖 특혜를 떠안긴 셈이어서 마지막까지 정부를 믿은 지방의 허탈함이 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머릿속에는 지방이 없다"는 격한 반발도 나오고 있다.

◆백화점식 특혜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이 5일 밝힌 '세종시 투자유치를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에 따르면 세종시에 입주하는 대기업에는 원형지 공급 기준으로 3.3㎡당 36만~40만원에 용지가 공급된다. 원형지 개발이란 기존의 획일적인 택지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조성되지 않은 토지, 즉 원형지 상태의 땅을 공급해 해당 사업자가 마음대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도 산업단지 수준의 3.3㎡당 50만~100만원에 토지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국공립대학에는 싼값의 원형지 공급과 함께 건축비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 관계자조차 "땅값은 거의 공짜라고 보면 된다"고 할 정도다.

세제 혜택도 파격적이다. 외국인투자 및 국내기업에는 3년간 소득·법인세(국세)가 3년간 100% 면제, 이후 2년간 50% 감면되고 지방세인 취득·등록세와 재산세는 15년간 감면된다. 게다가 세종시에 세수 기반이 없으므로 특례를 마련, 세종시 출범 전까지 국고에서 100%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중(二重) 특혜 논란이 가열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날 밝힌 '세종시 특혜'는 외국인투자기업이 1천만달러 이상을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할 때 지원하는 강력하고 특별한 인센티브 수준이다. 취득·등록세와 재산세 감면은 경제자유구역 외투기업(10년간 100%, 이후 3년간 50%) 수준을 더 능가한다. 기업도시와 국가산단 인센티브와 비교했을 때에도 비슷한 수준이거나 두 제도의 좋은 점만 골라 적용했다.(표1 참조)

대구시 한 관계자는 "정부는 적정성, 형평성, 공익성의 3원칙을 적용해 세종시 인센티브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찬찬히 뜯어보면 어떻게 하면 '선물'을 최대한 안겨줄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뿐"이라며,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는 모두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텐데 과연 세종시만을 위해 이렇게 퍼다 쓸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혀를 찼다.

◆허탈한 대구경북

정부의 세종시 '명품 기업도시' 조성 계획이 당초 우려했던 대로 '현실'로 바뀌자 대구경북의 미래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와 국가산단 지정·개발로 인해 부풀었던 꿈이 한순간에 깨질 지경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세종시는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등으로 우리보다 못한 조건은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땅값마저 정부가 큰 폭으로 보전해주는 '선심'을 베푼다고 하는데다 총리까지 나서서 기업들에게 세종시로 가라며 등을 떠미는 판국에 어느 기업이 외면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대기업의 경우 원형지 공급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이 진입도로·상하수도·폐수종말처리시설 등의 건설을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 공급가격은 3.3㎡당 70만원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렇다해도 분양가가 3.3㎡당 100만원인 대구경북의료단지는 물론 133만원인 성서5차산단, 160만~220만원인 이시아폴리스와는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분양가가 3.3㎡당 72만원인 대구테크노폴리스와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다양한 세제 혜택을 등에 업은 세종시를 마다하고 대구를 찾을 기업이 없을 것이라는 게 시의 판단이다.(표2 참조)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은 "정부 안은 원형지 공급에 따른 기업의 자부담까지 합해도 조성원가의 3분의 1수준으로 땅을 공급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지역이 조성원가의 3분의 2수준으로 공급하는 것과 비교할 때 형평에 어긋난다"며 "안 그래도 공들였던 대기업들이 세종시 눈치를 보느라 투자 의향을 재검토하고 있는 판에 이젠 기업 유치가 물건너갈 위기에 처했다"고 걱정했다.

◆기업유치 빨간불

지난해 12월 초 산업시설 용지 분양신청을 받은 대구 달성군 현풍·유가면 대구테크노폴리스 경우 한 달이 지난 현재 산업용지 43필지(37만7천㎡) 중 4%인 2필지(1만4천㎡)만 채워졌다. 분양계약을 맺은 업체는 모두 지역 업체였다. DGFEZ 관계자는 "그동안 세종시 특혜 때문에 기업들이 주저주저하는 바람에 분양이 늦어지고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11월 분양신청에 나선 영천첨단부품산업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총 96필지(91만7천㎡)의 산업용지 중 10.6%인 7필지(9만7천㎡)가 분양을 끝냈다. 대구 동구 봉무동 국제패션디자인지구(이시아폴리스)는 상황이 심각하다. 2008년 5월부터 산업시설 용지 분양을 시작했지만 근 2년 가까이 총 산업시설 용지(15만3천㎡)의 절반가량인 7만1천㎡의 땅이 놀고 있다.

'세종시 블랙홀'은 경제자유구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성서5차산업단지 내 대기업 부지(16만5천290㎡·5만평)와 대구국가산업단지, 대구경북의료단지 등의 기업유치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성웅경 대구시 산업입지과장은 "17년째 전국 꼴찌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대구의 1인당 GRDP를 높이기 위해 대구테크노폴리스와 성서5차산단, 국가산단 등에 대기업 부지를 많이 그려놨는데 세종시 특혜로 인해 버려진 땅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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