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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영남인사들, 교육진흥 위해 만든 계몽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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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교육회

교남교육회는 1908년 3월 재경 영남인사들이 교육진흥을 위해 조직한 계몽운동 단체이다. 창립 이후 1910년 5월까지 총 615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회원 중 관직 경력자는 모두 163명으로 26.5%이다. 계몽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대한제국기의 관리가 50명으로 8%이고, 1910년 병합 이후 일제의 관리가 된 자는 113명으로 18%이다.

관직의 종류는 군수·판사·군서기·도서기를 비롯하여 임시토지조사국 서기 및 기수·경찰관서 통역생·재판소 통역생 겸 서기·보통학교 훈도 등이었다. 대부분 말단 행정의 실무와 수탈, 그리고 교화의 하수인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상호·손지현·이각종·이선호·이우정·이우익·이종은·최정덕 등이다. 이들은 정치권력 내지 관료 지향적 인물들이었다

교남교육회의 회원 대부분은 191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당히 타협했다. 그래서 교남교육회의 친일 인사들은 일제의 관리로 식민지 통치기구에 재편성되었다. 국권회복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계몽운동단체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호남학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교남교육회 회원 중 일부는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반일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서상일·김응섭·배상렴·최준·남형우·박중화·안희제·김사용 등은 조선국권회복단과 대동청년단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갑성은 1919년 3·1독립운동의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고, 이중원은 예안에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남형우·김응섭·김지섭·김시현 등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중화·김사용·이경희 등은 노동운동, 유인식은 노동공제회 안동지회·신간회 안동지회 등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1910년대 독립운동에 있어서 무력항쟁과 3·1독립운동, 그리고 1920년대 민족운동에 참여하여 큰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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