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득 전 / 영천 시안미술관 / ~2010.3.28
르네상스의 논자들은 그림에서 가장 우선인 것이 화가의 창안인지 그것을 실현하는 기술인지를 놓고 씨름했다. 쉽게 생각해봐도 손에서 나오는 것보다 머리에서 나오는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다. 인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손의 일을 개념에 앞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미술을 다른 인문학들과 나란히 놓고 싶어 했어도 기술의 문제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인 한 그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지만 '개념미술'이란 용어는 그동안 격세유전 하듯 나타나던 그 흔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개념과 감각적 실천은 불가분의 것으로서 이제 기술은 묘사나 재현에 필요한 기량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화가의 개념을 성립시키는데 적용되고 구체화시키는 요인으로 받아들인다.
시각적 즐거움을 기대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던 관객이라면 먼저 '그림'이 없는 것과 개념적인 성격의 전시 환경에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전시설치의 규모와 의미심장함과 무거운 어둠이 깔린 실내 분위기가 조성하는 엄숙함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미술의 새로운 형식으로 안내하게 될 것이다. 보이는 것은 먹물과 흰 종이 그리고 붓 또는 손자국이 남긴 흔적 이 세 가지가 전부지만 이 모티프들을 가지고 공들인 설치 문제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색채를 쓰지 않는 작가가 늘 대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먹물과 흰 종이 이 둘 뿐이리라. 그것들은 감각보다 지적 사유를 더 자극할지 모른다. 그러나 도구로서 붓은 그것들 사이를 매개하는 수단이다. 동양화에서 붓은 서양의 그것과 달리 손의 감각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신체와 훨씬 더 밀착된 느낌이다. 서양화에서 붓은 물감의 채색 도구로서의 기능면이 의식될 뿐 그 사람의 기량과 나아가 정신의 연장으로서 까지 의식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동양화에서 붓은 화가의 기량이 흘러나오는 도구이자 바로 손과 밀착되어 있고 단순히 신체가 아니라 정신과 교양과 연결되어있다. 종이죽을 쥐어 손자국을 남겨놓은 오브제들은 바로 그 붓을 잡는 손을 상징하여 만든 것들이다.
화가는 가장 원시적인 이 재료들을 앞에 두고 수많은 관념과 시각적 대상들, 습관으로 익혀온 기량과 손의 감각들 사이에서 고민과 두려움, 포부와 기쁨의 순간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그 과정과 답을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을 이런 형태의 설치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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