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그래, 문제는 품격이야

중국이 단 한 방에 공한증(恐韓症)을 날려 버렸다고 난리가 났다. 얼마 전 동아시아축구대회 때 이야기다. 중국 신문들은 '32년 만에 한국에 설욕'했다며 대서특필했다. 중국 전역에 채널망을 가진 관영 CCTV가 하필이면 통쾌한 승전보를 중계방송하지 않아 팬들의 불만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서 한 가지 궁금했다. 중국 축구가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에서 귀공자가 된 이유 말이다.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축으로 한 중국 축구가 일취월장했다는 것쯤은 아무리 생속이라도 인정한다. 내로라하는 태극전사를 영패시킨 진짜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게 궁금했다. 실력만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에서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례적으로 중국 축구를 질타했다는 보도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지난해 가을 후 주석이 중국 축구계의 이름난 스타로 실력뿐 아니라 스포츠맨십의 본보기였던 룽즈싱(容志行)에게 "당신의 품격을 계승해야 한다"고 한마디하면서 달라졌다는 것이다. 편파 판정, 승부 조작에다 선수 품행이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는 등 중국 축구는 만신창이였다. 보다 못해 국가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축구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대대적인 정화 운동이 일어났고 문제의 축구 관계자들을 솎아내기에 이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품격'을 찾겠다며 다짐한 것이 중국 축구를 변모시킨 진짜 이유다.

품격의 문제라면 중국 축구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 축구가 마침내 품격을 의식하면서 달라졌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의 해법도 품격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중국 축구처럼 뭔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겠나. 그런데 우리 사회에 '품격'이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달라졌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면 아직 품격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다면 달라지는 건 시간문제인데도 말이다.

국제사회가 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여전하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도, 품격에 대한 지수가 높아졌다는 소리는 없다. 하드파워는 키웠으되 소프트파워가 여전히 형편없이 낮기 때문이다. 같은 당의 간판을 달고도 정책 견해가 다르다며 연일 치고받기에 바쁜 여당이나 그런 정부와 여당의 일에는 사사건건 반대하며 표 계산에만 골몰하는 야당도 품격 깎아내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좋은 자리에 보내달라며 줄 대기에 바쁜 공직자들도 그렇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 되는 자리에 앉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선거 풍토도 마찬가지다. 졸업식 뒤풀이랍시고 철모르는 후배들을 강압해 옷이나 벗기고 보고 즐기는 청소년들의 폭력적인 일탈에서도 품격은 찾기 힘들다. 어른들이 질 떨어지게 싸우는 모습만 보고 자랐으니 애인들 오죽하겠나. 제 소중한 것만 알고 양보나 타협 없이 서로 앙앙대느라 국민들은 힘 빠지고 국격과 국력은 뒤로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국가의 품격'에서 후지와라 마사히코 교수가 강조한 것도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일본이 긍지와 자신감, 고유의 정서와 양식을 잃으면서 국가의 색깔이 없어졌고 국가의 품격마저 잃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정신성과 도덕성, 고유한 미의식을 존중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야만 품격 있는 나라가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고민이라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이제 이미지와 브랜드가 먹여살리는 시대다. 이미지가 좋고 나쁨에 따라 신뢰도에 차이가 나고 호불호(好不好)가 결정된다. 이미지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덕목인 동시에 미래 가치이기 때문이다. 품격이 낮거나 없으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우리가 중국 축구를 낮춰본 것처럼 말이다. 물론 구호만으로는 품격이 높아지지 않는다. 분을 덕지덕지 바른다고 예뻐지지 않듯 말이다. 내면을 품위 있고 교양 있게 다듬어야만 겉도 빛이 나고 격이 갖춰지는 법이다. 자손 대대로 업신여김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품격은 중요하다.

徐琮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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